몇 해 전부터 TV에서 미켈란젤로, 드가, 고흐 등 유명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국내 대형 가전회사가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노트북,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휴대폰 등 제품의 사진을 명화 속 소품으로 끼워 넣어 광고를 한 덕이다. 이 광고는 진화를 거듭하여 명화 속 인물들이 움직이는가 하면 그림 밖 세상으로 나오기도 하더니 최근에는 고갱의 그림에 나오는 타이티 원주민들이 한국화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였다.
이 광고가 시리즈물로 나오기까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보도에 의하면 광고에 앞서 명화 속에 실제 제품의 이미지를 넣어보는 것을 먼저 시도했다는 작가들이 저작권 침해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지식재산기본법 입법 논란
명화 속에 실제 제품의 사진이나 이미지를 결합시킨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 보호대상은 ‘생각’이 아니라 ‘표현’이기 때문이다. 표현이 아닌 아이디어를 저작권으로 보호할 경우 그 아이디어를 기초로 하는 소설,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의 출현을 봉쇄하게 되어 부당하다. 아이디어나 지식(knowledge)은 인류의 유산으로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그것을 원재료로 만들어내는 각종 표현물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보호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지식재산기본법의 연내 제정을 목적으로 법안 제출을 서두르고 있다. 이 법은 ‘지식재산권’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말해주듯 지적재산권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것과, 흩어져 있는 정부 부처의 관련 업무를 총괄 조정하기 위한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구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식은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사유재산권 보호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학계와 실무에서 통용되고 있는‘지적재산권’이란 용어 대신 20개의 현행 법률을 개정하면서까지 ‘지식재산권’이라는 용어로 통일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다분히 이 법안이 기술적 사상을 보호하는 특허권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지적재산권은 특허권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재산권의 양대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해되고 있다. 모처럼 추진되는 기본법이 지적재산권 전반을 아우르지 못한다면 이용자들의 거센 저항을 어떻게 감내할 수 있을지, 국회의 법안심사 과정에서 격론이 예상된다.
지식재산기본법을 만들어야만 지식산업이 육성된다고 할 수도 없다. 특허, 상표, 디자인, 저작권 등 각종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고 이용자들과의 적절한 균형을 꾀하는 개별법은 이미 완비되어 있다. 지적재산권에 관한 개별 부처의 업무조정은 굳이 새로운 기본법을 만들지 않더라도 총리실의 정책조정 기능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개별 부처 간 업무조정의 편의를 위해 기본법 형식을 빌려 법률을 만든다면 각종 기본법이 계속 출현하게 될 것이다.
행정 포기하는 낭비적 입법
이미 발효된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기본법이란 헌법과 법률의 중간 어디쯤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우리 법체계에서 기본법은 어디까지나 국회가 만든 법률에 불과한 것으로서 개별법에 대하여 반드시 우선한다고 볼 수도 없다. 만약 기본법에 어긋나는 개별법이 만들어지는 경우 그 개별법은 위헌 법률이 아닐진대, ‘위(違)기본법 법률’이라는 신조어라도 만들어야 할지 의문이다.
정부가 모든 난제를 법 제정을 통해 처리하겠다는 발상은 행정을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 제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단지 행정의 효율만을 위해 법을 자꾸 만드는 것은 그로 인해 새로운 위원회 조직이 늘어나고 이는 국민의 세금부담으로 귀결되므로 ‘낭비적 입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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