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아프간 재파병, 극단 무장조직 자극 불상사 일어날 수도
9.11 이후 처음으로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파키스탄 탈레반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폭탄테러 시도가 발생하면서 전세계가 또한번 테러 공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재파병과 11월 G20(선진 20개국) 정상회의 개최를 앞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탈레반 조직원 및 혐의자가 잇따라 검거되면서 테러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 또는 한국인에 대한 테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파키스탄 현지에 주재하는 해외 탈레반 전문가들은 한국의 아프간 재파병이 탈레반의 태도 변화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탈레반 목표 그룹별로 달라
이슬람 무장조직인 탈레반은 크게 주 활동무대에 따라 아프간 탈레반, 파키스탄 탈레반으로 나뉜다. 미국 9ㆍ11테러를 일으킨 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는 이들 탈레반의 근거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별도의 세력이다. 이들은 '이슬람국가 건설과 반미'라는 정치적 목표는 비슷하지만, 구체적으로 추구하는 내용은 차이가 있다.
탈레반 전문기자 살림 샤자드 아시아타임스 파키스탄지부장은 "파키스탄 탈레반과 아프간 탈레반의 목표가 자국에 이슬람체제를 건설하고 미국을 축출하는 것이라면, 알 카에다의 목표는 한 마디로 '미국을 끝장내는 것'"이라면서 "국제 테러활동은 주로 알 카에다의 영역이며, 그들과 가까운 파키스탄 탈레반이 협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이슬람 무장조직의 주요 타깃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살림 지부장은 "한국은 미국의 우방이긴 하지만 아프간에서 철군했을뿐더러 제한적인 협조관계에 있어 탈레반이 주요 타깃으로 삼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키스탄탈레반운동(TTP) 소속이라고 밝힌 메수드씨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 모두 미국과, 이슬람에 해를 끼치는 나라를 반대하지만 동시에 한국 등 모든 나라를 적으로 돌리고 싶어하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아프간 재파병이 관건
전문가들은 대체로 7월로 예정된 아프간 재파병이 한국에 대한 탈레반의 태도가 돌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들은 현지에 파병된 한국인 병사들의 희생은 숫자가 문제일 뿐,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미국의 전략정보 분석업체인 스트랫포의 카므란 보카리 중동ㆍ남아시아지국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파병숫자가 적긴 하지만, 한국군대 역시 아프간 탈레반의 공격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뉴스위크지의 론 모로우 남아시아지국장은 "아프간의 카르자이 정부를 돕는 다른 파병국과 마찬가지로 현지의 한국 군인과 민간인은 탈레반의 주요 타깃(prime target)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테러 가능성은 두고 봐야
이슬람 무장조직이 G20 정상회의 등이 개최되는 한국 영토 내에서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모로우 지국장은 "탈레반 그룹은 지금 한국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면서 "재파병 이후에도 한국에서의 테러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반면 보카리 지국장과 살림 지부장은 "G20 정상회의가 알 카에다의 관심을 살만한 일인 건 분명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보카리 지국장은 "실제 실행여부는 그때 알 카에다의 역량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살림 지부장은 "G20에 대해 테러공격을 아직 세우지 않은 것 같다"면서도 "알 카에다가 향후 한국 내 미국시설을 타깃으로 한 테러를 벌일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에 탈레반 조직이나 요원은 있을까. 스트랫포의 보카리 지국장은 "수를 특정하긴 힘들고 다른 서방국보다 적지만 분명히 존재한다"고 답했다. 뉴스위크 모로우 지국장과 아시아타임스 살림 지부장은 "상시조직은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탈레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파슈툰 부족을 중심으로 협조가 가능한 지지그룹들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 테러에 동원될 수 있는 이른바 슬리퍼(sleeperㆍ테러 대기자)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정보원의 전 고위간부는 "미국의 우방국 중 유독 우리나라는 이슬람권 이민자 수가 많은데 비해 이들에 대한 출입국 관리가 느슨해, 아프간 상황이 악화할 경우 본보기 테러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슬라마바드(파키스탄)=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 잠입 조직원 '슬리퍼' 주의보
만일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무장세력이 우리나라에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면, 테러를 실행에 옮기기 한참 전에 테러 세포를 먼저 심는다. 그들은 평소에 평범한 IT회사 직원이나 항공사 화물부서 직원, 공장 노동자 등으로 생활하다가 지령이 떨어지면 훈련받은 대로 테러를 실행에 옮긴다. 이들은 은어로 '슬리퍼'(Sleeper)라고 불린다.
지난달 초 다른 지방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때문에 더욱 삼엄해진 경계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한 복판에서 자동차 폭탄 테러가 가능했던 것은 이미 침투해 있던 슬리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키스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정혜숙씨는 당시 "탈레반의 슬리퍼 3명이 이슬라마바드에 들어와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가 교민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정보부가 도청 등을 통해 미리 포착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 걸러내지는 못한다고 했다.
평소에는 평범한 이웃처럼 보이는 슬리퍼들은 폭탄이나 위험물질을 가지고 출입국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색출하기가 힘들다. 이들은 파키스탄의 훈련캠프 등에서 폭력기술과 종교의식, 정신무장 등의 훈련을 받는다. 또 세계 어디서나 값싸게 폭탄재료를 구해 제조하는 법을 배운다. 이들은 주머니에 5달러만 있으면 할인마트로 달려가 질소비료, 설탕, 금속조각, 플리스틱 튜브 등을 사서 폭탄을 만들 수 있다.
슬리퍼는 세계 각국의 모스크나 대학 캠퍼스 등에서 주로 차출된다. 무슬림 이민자 인구가 많은 영국은 그간 서방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사들을 공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에 근거를 둔 이슬람단체 알 무하지룬의 창설자인 셰이크 오마르는 영국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모스크와 대학에서 연간 1만8,000명의 영국 태생 무슬림을 선발해 세계 각국의 전장으로 보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들은 보통 훈련을 마친 뒤 본국으로 돌아와 슬리퍼로 오랜 기간을 잠복한다. 분쟁전문 프리랜서 PD 김영미(40)씨는 "테러대상국에 선교자와 모집책이 모스크를 세우고, 그곳에서 선발된 요원이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슬리퍼로 준비를 마칠 때까지 짧게는 수년에서 십수년이 걸린다"고 전했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 살림 샤자드 아시아타임스 파키스탄 지부장/ "탈레반 투쟁은 반미감정서 출발 한국 美에 전면협조땐 위험 가중"
"탈레반이 이슬람의 세계화를 위해 싸운다고요? 탈레반을 싸우게 하는 건 종교가 아니라 미국에 대한 증오입니다. "
탈레반이 무엇 때문에 테러와 무장투장을 일삼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살림 샤자드(사진) 아시아타임스 파키스탄지부장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살림 지부장은 "예를 들어 파키스탄 탈레반 지도부 다수는 마드라사(종교학교)가 아니라 일반(비종교) 중ㆍ고교와 대학에서 교육받았다"며 "탈레반 무장투쟁이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는 근거"라고 말했다.
살림 지부장은 홍콩에 본사를 둔 아시아타임스 소속으로 테러 및 탈레반 전문기자다. 그는 탈레반의 본거지인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부족자치지역(FATA)을 오가며 탈레반 지도부를 자유로이 만나 취재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파키스탄 정부에 탈레반 문제에 대해 자문하고 있으며,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유력 매체에도 기고한다.
살림 지부장은 "1990년 걸프전을 계기로 시작된 무슬림의 반미감정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크게 확대됐다. 인구의 30%가 아프간과 같은 민족(파슈툰족)인 파키스탄에서도 반미감정이 고조됐다"고 뿌리깊은 증오의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이 최근 파키스탄을 포함한 13개국에 대해 비자를 거의 내주지 않는 등 입국장벽을 높인 것도 반미감정 고조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살림 지부장은 "미국이 물러나기 전에 무슬림의 무장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며, 물러난 후에도 수년간 이 증오(투쟁)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탈레반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무릎을 꿇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는 "한국이 미국에 매우 제한적으로 협조하는 것은 영리한 전략"이라면서 "만일 한국영토 내 테러나 파병군인의 희생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고 싶다면 파병을 하지 않으면 되는데 과연 가능하겠나"라고 되물었다.
이슬라마바드(파키스탄)=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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