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도전'을 선언한 '허정무호'가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을 목표로 마지막 전력 담금질에 돌입했다. 남은 시간은 앞으로 30일, 빡빡한 일정과 네 차례의 친선 경기를 고려할 때 시간은 많지 않다. 앞으로 1개월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남아공에서의 성패가 좌우될 전망이다. 사상 첫 원정 16강에 도전하는 '허정무호'의 남은 과제를 짚어본다.
선택과 집중
허 감독은 지난해 12월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상대가 결정된 후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의 특성에 따른 개별형 전술로 상대 허점을 노리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른바 '맞춤형 전술'로 16강을 돌파한다는 것이 허 감독의 복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파고들어야 할 상대의 허점을 이미 파악했어야 한다. 남은 것은 상대의 빈 틈을 어떤 식으로 공략할 지 구체적인 방안을 세우는 일이다. 특히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골 결정력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약속된 플레이'를 통해 골문을 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허 감독은 10일 파주 NFC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본선 준비와 관련, "우리의 플레이를 가다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부터 보완해야 한다.
이기는 버릇
월드컵 본선을 앞둔 스파링은 내용뿐 아니라 결과도 중요하다. 지난 두 차례의 월드컵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히딩크호'는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잉글랜드(1-1), 프랑스(2-3)와 대등한 승부를 펼치며 4강 신화의 발판을 만들었다. 반면 '아드보카트호'는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노르웨이(0-0), 가나(1-3)에 고전하며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결전지에 입성했고 16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허 감독은 '유쾌한 도전'을 천명했다. 본선까지 네 차례의 평가전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면 허 감독이 구상하는 '신바람 축구'를 구현할 분위기가 조성된다. 특히 마지막 스파링인 스페인과의 친선경기(6월 4일 오전 1시) 결과에 눈길이 쏠린다. 우승 후보 1순위인 스페인을 상대로 선전할 경우 태극전사들은 '누구와 붙어도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을 갖고 남아공에 입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깜짝 스타
박지성(맨유)은 포르투갈과의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1-0)에서 결승포를 작렬하며 한국 축구의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하던 박지성은 월드컵 개막 1개월여를 앞두고 스리톱의 붙박이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낙점됐고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잇달아 골을 터트린 데 이어 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스타로 급부상했다.
'허정무호'에서 '제 2의 박지성'이 탄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허 감독도 "오히려 큰 무대에서는 무명 선수가 일을 낼 수 있다"며 '깜짝 스타' 출현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김보경(오이타) 구자철(제주) 등은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지난 1~2월 A매치에서도 잠재력을 확인시켰다. 월드컵 준비의 마무리 단계에서 '허정무호'의 전력을 업그레이드시킬 새로운 별이 나타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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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호' 향후 일정 (한국시간 기준)
5.16 오후 7시 서울월드컵경기장 에콰도르와 평가전
5.22 일본으로 출국
5.24 오후 7시20분 일본 사이타마서 일본과 평가전
5.25 오스트리아로 출국
5.30 오후 10시 오스트리아 쿠프슈타인 벨라루스와 평가전
6.04 오전 1시 오스트리아 인스브르크 스페인과 평가전
6.05 남아공 루스텐버그 베이스캠프로 이동
6.12 오후 8시30분 포트 엘리자베스서 그리스와 조별리그 1차전
6.17 오후 8시30분 요하네스버그서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2차전
6.23 오전 3시30분 더반서 나이지리아와 조별리그 3차전
■ 허정무 감독 어록으로 돌아본 2년4개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시작으로 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다섯 명의 한국인 사령탑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도전했다. 그러나 4무 10패의 초라한 성적만을 남기며 번번이 고개를 떨궈야 했다.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은 남아공에서 한국인 사령탑 월드컵 첫 승이라는 새 역사 창조에 도전한다. 취임 후 남아공 월드컵 예비 엔트리 소집까지 허 감독이 걸어온 길을 그의 목소리를 통해 되돌아본다.
●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2007년 11월22일 FA컵 결승전 미디어데이)
허 감독은 전남 사령탑을 맡고 있던 2007년 FA컵 결승전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침체일로에 있는 한국 축구에 변혁이 필요하다며 이 같?말했다. 허 감독은 12월7일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고 이후 과감한 세대 교체와 실험을 통해 '거품 빼기' 의지를 확인시켰다.
● 시련과 실험의 연속이었다(2008년 12월11일 연말 결산 기자회견)
허 감독은 취임 첫 해를 이 같이 요약했다. 2008년 1월 공식 출범한 '허정무호'는 초기에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특히 9월 북한과의 최종 예선 첫 경기(1-1)에서의 졸전으로 여론은 극도로 악화됐다.
그러나 10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최종예선 2차전 승리(4-1)로 비난 여론은 잦아들었고 허 감독은 11월 사우디아라비아 원정경기(2-0) 승리로 남아공으로 가는 최대 고비를 넘어섰다.
● 외국인 감독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2009년 6월17일 이란전 기자회견)
남아공 월드컵 예선을 마무리한 후 기자회견에서 '외국인 사령탑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허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허 감독은 "좋은 성적을 보장할 수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모셔와야 한다. 그러나 막연히 외국인 감독 운운하지 말고 알렉스 퍼거슨, 아르센 웽거 등 구체적으로 거명해줬으면 한다"고 잘라 말했다. 남아공에서 한국 축구인의 자존심을 곧추 세우겠다는 의지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 호시탐탐, 호시우보의 자세로 정진하겠다(2010년 1월3일 새해 첫 훈련 인터뷰)
월드컵의 해를 맞아 던진 허 감독의 신년 메시지다.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 같은 날카로운 기세로 소처럼 묵묵하고 신중하게 목표를 향해 나가겠다는 구상이 이 한마디에 담겨있다. 한일 월드컵을 2년 앞둔 지난 2000년 대표팀 지휘봉을 반납하는 아픔을 겪었던 허 감독이 '호시우보'의 자세로 남아공에서 권토중래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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