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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연극 '광부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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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연극 '광부 화가들'

입력
2010.05.1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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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와 화가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것만큼, 스타와 앙상블이란 쌍도 어딘지 어긋난다. 명동예술극장이 만든 연극 '광부 화가들'에서는 현재 한국의 연극 무대에서 통용되는 관행이 비틀어진다. 이 연극이 2007년 영국 뉴캐슬라이브씨어터에서 초연된 최신작이라는 사실은, 현재 서양의 극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거의 실시간에 추체험케 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브로드웨이는 9월쯤 650석 중극장에서 초연한다 하니, 미국을 앞지르는 셈이다.

이 무대가 갖는 미덕의 요체는 연극성에 있다. 권해효, 문소리 등 매체에서도 이미 성가를 높인 배우들이 우선 눈에 띄기는 하나, 여기서는 고향으로 돌아와 무대를 풍성하게 하는 앙상블의 일원일 뿐이다. 지난 시절, 브레히트라는 거물을 앞세우고 이 땅을 점령한 서사극 이론은 연극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일종의 무기였다. 영상과 음악 등 '소외 효과'로 통칭되는 갖가지 연극적 수단을 구사하는 데에는 민족극, 서구극의 구분이 없었다.

변혁에의 열망은 지나가버린 지금이지만, 기법으로서의 서사극은 살아 상상력을 풍부하게 한다. '칠수와 만수' '비언소' 등에서 무르익은 연출력으로 소시민의 위선을 단칼의 웃음으로 폭로해 낸 연출가 이상우씨의 작업은 그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무대의 웃음이 공허하지 않은 데는 그가 자연스런 한국어 대사를 염두에 두고 애초 번역 작업도 겸했다는 점에 가장 크게 기인한다. 서사극 양식의 재발견에 가슴이 느껍다.

초대형 디지털 박막 스크린 등 극장이 제공하는 최신 하드웨어는 이씨의 경륜과 어우러져 무대의 판타지를 빛낸다. 사건이 펼쳐지기 전 연도와 장소 등을 제시하는 것은 서사극의 고전적 수법이지만, 이 무대는 전면 상단부의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상황과 관련 이미지들을 제시한다. 터너, 블레이크, 세잔느. 고흐의 작품을 투사하거나 '며칠 후 애싱턴 그룹의 첫번째 전시회' 등으로 무대 설명을 곁들인다.

관객이 무대로 몰입되는 것을 꾸준히 차단하고 이화(異化)시켜 그들을 각성시키려는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가 21세기로 버전업된 셈이다. 1980년대 극단 연우무대에서 차이무까지 웃음을 매개로 한 숱한 명무대를 남기며, 관객들의 의식을 고양해 온 이씨의 완력이 무대 곳곳에 삼투돼 있다. 30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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