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출범 후 10여년 동안 유로화는 순항했다.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 중 유로화의 비중은 출범 당시 18%에서 2009년 27%까지 확대됐고, 국제 채권발행 표시통화로서는 2004년 이후 달러화를 능가할 정도로 국제화에 성공했다. 쌍둥이적자(재정적자+경상적자)에 짓눌려 갈수록 힘을 잃는 달러화와는 대조적으로, 유로화는 머지 않아 '제1 기축통화'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남유럽 재정위기로 유로화는 출범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조지 소로스는 올 들어 공공연히 '유로화의 붕괴'를 언급했고, '채권왕' 빌 그로스도 유로화 종말론에 동조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유명 경제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로존 16개국은 같은 통화에 묶여 있지만 각 국가가 서로 다른 재정정책을 쓰고 있고 정치적 이해관계도 달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단일 환율, 재정 분리
마틴 펠드스타인이나 밀튼 프리드먼 등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유로존 출범 전부터 유로화의 미래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다. 2003년 프리드먼은 "10년 내 유럽경제통화동맹(EMU) 체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단일 환율 체제이기 때문에, 그리스 등 특정 국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환율(통화가치 절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일통화ㆍ단일환율을 쓰기 위해선 각국 경제가 건전성면에서도 비슷해져야 한다. 하지만 유로존 국가들은 재정을 다르게 운용하는데다, 비록 유로존이 제시한 건전재정목표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제재도 없었다.
이처럼 언제든 균열과 불균형이 폭발할 수 있는 불완전한 체제임에도, 유로존은 유사시 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 이번 그리스사태에 각국이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유로화 체제 유지 가능성 높아
유로화에 내재한 문제들은 쉽게 해소될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스페인 이탈리아 등 비교적 경제규모가 큰 국가들이 연쇄 부도 사태를 일으키거나 ▦문제 국가에 대한 지원을 거부한 독일 등 유로존 핵심 국가들이 탈퇴할 경우 실제로 유로화 체제가 붕괴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하나의 유럽'을 향한 유로화 단일통화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은행은 11일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권이 미국과 신흥시장국으로 양분되는 상황에서 '하나의 유럽'을 통한 강력한 대항세력육성은 유럽국가들이 포기할 수 없는 정책목표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완책은 없나
유로존 보완과 유지를 위한 대안은 이미 많은 학자들과 정책가들이 논의 중이다. 예컨대 ▦유럽통화기금(EMF) 설립 ▦유로 공동채권 발행 ▦나아가 유럽통합정부 설립까지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자문을 맡고 있는 폴 드 그로웨 루벤대 교수는 "유로존 모든 국가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확고한 결심을 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한 국가에 재정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매번 체제 전체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해당국가들의 엄청난 희생과 노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앞으로도 유로화는 상당기간 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유로화가 지난 10년 간의 '행복한 유년기'를 마감하고 '혼돈의 사춘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고 "유로화가 이전과 같은 강세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며, 미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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