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리만브라더스 사태 이후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달러패권시대의 종언'을 예고했다. 미국의 경제시스템이 무너진 이상 달러화는 더 이상 세계유일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으며, 금융위기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유로화가 달러화에 버금가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나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로 유로화는 치명적 한계를 드러내면서, '기축통화 자격'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조짐을 보였던 남유럽 재정위기는 7,500억유로 규모의 긴급지원 프로그램으로 일단 진정되는 분위기지만, 이번 사태로 세계통화질서는 유로화의 추락과 함께 달러화의 기축통화 위상이 더 공고화되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20면
10일(현지시간) 런던시장에서 유로ㆍ달러 환율은 유로당 1.279달러를 기록했다. 그리스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던 6일(1.263달러)에 비하면 다소 반등한 것이지만, 작년 말에 비하면 유로화의 가치는 무려 11%나 떨어진 상태다. 재정위기로 인해 유로화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달러화가 '최후의 안전자산'으로서 다시 주목 받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유로화에 내재되었던 모순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고 지적한다. 유로존 16개국 가운데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가 모두 똑같은 통화(유로화)를 씀으로써, 환율이 개별국가의 경제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통상 무역불균형이 생기면 환율의 절상 또는 절하를 통해 해결하게 되는데, 단일 통화를 쓰다 보니 유로존 내에서도 독일과 같은 흑자국과 그리스 같은 적자국 간의 불균형이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최신호에서 "연방국가인 미국처럼 통화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통합된 '유럽 연방'이 되어야만 유로화가 궁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정위기의 늪에 빠진 유럽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한 이상 유로화의 앞날도 불투명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흥모 한국은행 해외조사실장은 "엔화도 한때 기축통화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버블 붕괴로 금융시스템 불안이 드러난 후 위상이 급락했다"면서 "위안화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자본 유출입 개방 등 앞으로 남은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결국 달러화 외에는 대체할 만한 기축통화가 없고, 유일한 대항마였던 유로화의 몰락은 오히려 달러화의 위상을 더 굳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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