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아, 막걸리는 맛있었다. 역시 교육은 내가 좋아하는 걸 너희들이 좋아하게 하는 것이었다. 너희들이 막걸리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교육의 보람에 가슴 뿌듯했다. 남자친구와 있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면 내 핑계를 댄다고 했지. 그래 내 이름이 네가 좋아하는 친구와의 시간을 좀 더 확보해 준다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자주 그러지는 말거라. 부모님이 내 이름을 불신하는 순간 너의 좋은 핑계 거리도 사라질 것이니.
의심받는 대학의 역할
공동 작업의 열정에 차 있는 너희들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자신의 역할에 책임감을 느끼는 너희의 모습이 진짜 어른처럼 보였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같이 무엇인가를 만들어 간다는 것. 하지만 지금 같은 열정만 유지해 간다면 관계와 창의성이 사실은 같다는 걸 배우게 될 거다.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소통을 위한 것이고, 소통은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 이제 곧 너희가 사회에 진출해서 맞게 될 일들도 지금의 공동 작업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물론 너희는 그 공동 작업 피라미드의 맨 아랫단에서 너희의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불리하지만 누구나 하는 일이다. 중요한 건 어제 보여줬던 열정 같은 것들 아니겠니?
사회 진출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썰렁해졌지. 열정은 한 순간에 한숨으로 바뀌었고,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는 급속하게 스펙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오르지 않는 토익 점수, 화형처럼 찍혀서 바뀌지 않는 저학년 시절의 낮은 학점. 책을 많이 읽는 것이 가장 좋은 스펙이라는 내 말에 경석이가 그랬니? 읽은 책의 권수를 써넣는 이력서 칸은 없다고. 나는 회사에 필요한 사람도 결국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교양인이라고 항변했고, 선희는 인문학적 소양도 토익처럼 점수화된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이야기는 기어이 고대를 자퇴한 김예슬 양으로 옮겨 갔다. 그녀가 '자본에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라고 규정한 대학에서 나는 하청업자로 너희는 인간 제품으로 마주 앉아 막걸리를 기울이는 중이었다. 희철이가 "선생님, 어차피 제품이라면 어디나 잘 팔리는 상급 제품을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우리가 웃었던 웃음은 씁쓸한 것이었다. 혜정이였니? 취업도 쉽지 않은데 취업을 원하는 것도 잘못된 거라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던 사람이? 자리는 그 즈음 썰렁을 넘어 긴 침묵에 빠져 들었지.
그 침묵의 끝에서 내가 한말은 그녀의 선언은 우리에게 우리가 당연히 원하는 것이 얼마나 진정한 것인지 묻고 있는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지. 대학은 언제나 그 사회가 수혜자들이 더 나은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다니는 곳이면서, 스스로의 기득권을 반성하고 의심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갖고 있는 것이었고. 전자가 실용적 전문인의 대학이라면 후자는 지성적 교양의 대학이라고. 그녀의 선언은 오늘날 대학에서 화석화한 교양과목으로만 살아있는, 이 반성과 의심의 역할을 통렬히 일깨우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길을 찾아라
지영아, 너희들은 제품이 되지는 말아라. 의심과 반성으로 너희들을 제품으로 내모는 이 전 지구적 자본의 흐름에 저항해라. 수정 같은 자의식으로 항상 스스로 원하는 것들의 진정성을 물어라. 그러나 대학을 그만두지는 말아라. 대학 속에 길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학 밖에도 길은 쉽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이 모든 것의 해결은 아니지만 취업이 아닌 곳에서도 해결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길을 찾아라. 그래서 살아있어라. 살아있는 게 비루하다면 내게 핑계를 돌려라. 진정한 스승이 못될 바에는 너희들의 변명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니?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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