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물방울은 동그르 꽃 밑에 꽃 연한 살 밑에 먼 곳에서 벗들은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고 저녁 스며드네,
한때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의 모든 주막이 일제히 문을 열어 마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저녁을 거두어들이는 듯했는데,
지금 우리는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네 양념장 밑에 잦아든 살은 순하고 씹히는 풋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저녁 스며드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가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저를 풀어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풀어 스며드는 저녁을 그렇게 동그랗게 안아주는데,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네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살점을 집어 불 위로 땀을 흘리며 올리네,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빛 아래 그렇게 그렇게 스며드는 저녁, 저녁 스며드네
● 한국의 음식문화는 참 이상해요. 우리는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서 식당에 가잖아요. 무슨 할 얘기가 있어서 만났다가 처음에는 고기를 구워 먹느라, 나중에는 술에 취해서는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라고 말하죠.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음식문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가끔은 그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음식문화가 마음에 들 때가 있어요. 죽어라고 고기만 구울 수도 있으니까. 볼이 미어터지도록 상추쌈을 입에 넣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 아무 말도 안 할 수 있으니까. 모든 자리마다 반가운 척 떠들어야 된다면 그것도 꼴불견. 스며들 때는 그냥 스며드는 것도 생활의 지혜랄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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