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실리콘밸리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시의 앰피시어터 파크웨이 1600번지에 삼성전자와 LG전자 관계자들이 시차를 두고 다녀갔다. 최첨단 TV 제작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TV 시장서 세계 1, 2위를 달리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다녀간 곳은 뜻밖에도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이다. 미 구글 본사에서 만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구글TV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며 "구글TV를 내놓기 위해 수 차례 논의했다"고 말했다.
구글TV란 구글이 개발한 운용체제(OS) '안드로이드'를 내장한 TV로, 일반 TV와 달리 인터넷에 접속해 인터넷 검색, 이메일, 유튜브 동영상 등 각종 구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구글 관계자는 "단순 인터넷 접속뿐 아니라 TV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설치할 수 있어 TV를 스마트폰처럼 사용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여러 업체들과 활발한 제휴를 추진중"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스마트 TV가 탄생하는 셈이다.
공룡 화석과 우주선, 파도 수영장이 있는 회사
어떻게 인터넷 기업이 엉뚱하게 TV 제작을 꿈꿨을까. 미 구글 본사를 방문해 직원들의 상상력을자극하는 회사 분위기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최대한 편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 구글이 지향하는 직장이다.
'구글 캠퍼스'라 불리는 구글 본사는 20여개 건물에 7,000명의 직원이 상주한다. 여기 중심은 40~43의 번호가 붙은 4개의 은색 건물. 이 가운데 인터넷 검색 연구팀이 자리잡은 43번 건물은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사무실이 있는 구글의 심장이다.
때마침 방문 시간이 점심때여서 43번 건물 앞 광장은 온통 카페로 변해 있었다. 20개의 건물마다 상주한 20개의 카페에서 무료 제공하는 점심을 받아든 직원들이 일제히 건물 앞에 모여 햇볕을 받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카페마다 제공하는 메뉴가 달라서 양식, 중식, 일식은 물론이고 김치와 김밥까지 원하는 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 직원뿐 아니라 초대 받은 손님들도 무료 점심을 대접받는다. 김밥과 피자, 우동 등을 받아서 먹어보니 웬만한 식당 못지 않게 맛이 훌륭했다.
직원들을 최고로 대우하기 위한 구글의 배려는 30m 간격으로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음료수와 초콜릿, 아이스크림, 과자류 등 간식 비치대가 마련돼 있다. 일부 건물에는 직원들이 피곤하면 피로를 풀 수 있는 무료 마사지 시설, 파도가 치는 소형 수영장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 설치돼 있다.
12시부터 2시 사이에 식사를 마친 직원들을 따라 43번 건물로 들어갔다. 2008년에 '안드로이드폰' 사진이 유출된 뒤 실내 사진 촬영이 금지된 이 건물 로비에는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전세계 도시를 360도로 살펴볼 수 있는 '구글 어스 파노라마 뷰' 시설이 설치돼 있다. 삼성전자의 LCD 모니터가 이용자를 둘러싸고 있는 이 시설은 비행기 조종간을 닮은 조이스틱을 움직여 원하는 곳을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360도 전경은 굉장히 정교해 서울 여의도 63빌딩은 물론이고 해저 지형까지 살펴볼 수 있다.
건물 1층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천장에 매달린 소형 우주선이다. '스페이스십 1'으로 불리는 이 우주선은 폴 앨런이 추진하는 개인 우주여행을 위해 래리 페이지가 구입한 것이다. 구글은 개인의 단순 호사취미를 넘어 행성과 행성을 연결하는 '우주 인터넷' 사업을 추진중이다.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글의 빈트 서프 부사장이 우주 인터넷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위성을 통해 인터넷 신호를 주고받는데 성공했다.
또 다른 건물에는 거대한 LCD 화면에 온갖 단어들이 쉼없이 흐르고 있다. 구글 관계자는 "미국내 네티즌들이 구글을 통해 검색하는 단어들이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에 염소떼가 사는 이유
구글의 핵심은 인터넷 검색이지만 이것만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구글 관계자는 "구글에는 7 대 2 대 1의 법칙이 있다"며 "7은 인터넷 검색, 2는 동영상 등 검색 관련 서비스, 1은 완전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폰'과 구글TV, 태양열 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은 모두 '1'에서 나온 아이템이다.
건물을 벗어나면 '1'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건물 앞에는 유기농 채소밭이 길게 늘어서 있고, 각 건물마다 이동시 직원들이 타고 다니는 '구글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에릭 슈미트 최고경영자(CEO)가 있는 건물은 3층부터 1층까지 한 번에 내려올 수 있도록 미끄럼틀이 설치돼 있다.
당혹스러운 것은 구글 캠퍼스를 누비는 염소들이다. 구글 캠퍼스 맞은 편에 구글이 확장을 대비해 사놓은 드넓은 목초지가 있다. 이곳에 약 50마리의 염소떼가 활보하고 있다. 마구 자라는 잡초 제거를 위해 제초기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염소를 풀어놓은 것이다. 구글 관계자는 "구글이 목장 사업을 계획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며 웃었다.
한국 직원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최근 미국 본사에 합류한 한국인 직원 A씨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가 구글의 특징"이라며 "일과 중 80%는 자기에게 할당된 업무, 나머지 20%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연구하는 기업 문화 속에서 독특한 구글의 서비스가 쏟아져 나온다"고 강조했다.
특히 A씨는 비밀이 없는 구글의 기업 문화도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구글은 다른 팀의 업무를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다"며 "자기 업무 때문에 일부러 확인하지 않을 뿐 철저한 공개주의 원칙도 구글의 또다른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마운틴뷰(캘리포니아주)=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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