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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죽다 살아났으니 동갑내기 친구지" 장관수 상주초교 교장선생님 25년만에 제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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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죽다 살아났으니 동갑내기 친구지" 장관수 상주초교 교장선생님 25년만에 제자 만나

입력
2010.05.1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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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 못난 제자의 절 받으십시오." "그냥 앉으시게. 자네와 난 동갑내기(?) 친구 아니던가."

9일 오전 경북 상주시 부원동 단층 주택의 사랑방. 올해 교직 생활 41년째인 상주초등학교 장관수(61) 교장의 집에 25년 만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경기 부천시에 살고 있는 제자 천원필(50)씨였다.

제자의 큰 절을 거부하며 실랑이를 벌이던 장 교장은 한참 만에야 못 이긴 척 받아들였다. 절을 올린 천씨는 마치 어린애가 엄마에게 달려가듯 장 교장 품에 안겼다. 등을 토닥이던 장 교장은 "자네도 이제 흰머리가 성성 하구먼…."이라며 가는 세월을 되뇌었다.

장 교장이 동갑내기 제자 천씨와의 인연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육대를 갓 졸업한 후 상주 백원초교 6학년 담임으로 발령받은 장 교장은 그 해 12월 21일 오전 땔감용 솔방울을 따기 위해 반 학생들과 뒷산에 올랐다.

이 때 개구쟁이 한 명이 대열을 이탈해 인근 용수막 저수지에서 얼음을 지치다 그만 얼음 숨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천씨였다. 당시 저수지에는 얼음낚시를 하는 낚시꾼과 동네 주민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아무도 손을 쓸 수 없었다. 얼음이 너무 얇은 탓에 숨구멍으로 접근하는 순간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한달음에 뒷산에서 맨발로 내달려온 장 교장은 넥타이조차 풀지 않고 저수지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장 교장도 얼음이 깨지면서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목만 내민 채 깨진 얼음을 헤치며 저수지 한가운데로 헤엄쳐 갔다. 얼음조각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채 구해낸 어린 제자는 이미 호흡이 끊긴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차가운 물 속에서 생사를 오가던 장 교장도 저수지를 벗어나 땅에 발을 밟는 순간 기절하고 말았다.

그 때부턴 주민들이 나섰다. 이불로 두 사람을 감싼 후 가장 가까운 집으로 옮긴 뒤 방에 장작불을 지폈다. 간호를 한 지 2, 3시간이 지났을까. 기적처럼 두 명 정신을 차렸다.

수영도 할 줄 몰랐던 장 교장은 당시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붕대로 온 몸을 두른 채 결혼식장에 나타난 그의 몰골은 볼만했다. 그래도 주례를 본 고 윤하인 당시 백원초 교장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제자를 살린 신랑은 훗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교장선생님이 될 겁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례의 예언(?)에 맞게 장 교장은 상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초등학교의 교장이 됐다.

장 교장은 "같은 날 둘 다 죽다 살아났기 때문에 '동갑내기'라고 이야기한다"며 "40여 년 교직생활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을 꼽으라면 결혼 일주일 전에 제자를 구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만남은 25년 만에 극적으로 이뤄졌다. 장 교장은 1985년 결혼 직후 아내와 함께 찾아 온 천씨에게 "앞으로 우리 열심히 살다가 퇴직 1년 전에 만나자"고 주문했다. 그 후 천씨는 매년 12월 21일만 되면 장 교장에게 "인사 드리러 가겠다"고 하다가 혼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할 수 없이 편지와 선물로 마음을 전하던 천씨는 내년에 장 교장이 퇴직하는 것을 알고 이날 부푼 가슴을 안고 선생님을 찾았다.

천씨는 "장관수 선생님은 또 다른 인생을 선물해주신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다시 태어나도 장 선생님을 존경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태기자 kr88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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