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깡패 같은 애인'은 삼류 깡패 동철(박중훈)과 지방대 출신의 취업 준비생 세진(정유미)의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변두리 반지하 원룸을 배경으로 풀어낸다.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해 얻은 직장이 부도난 뒤 쫓기듯 낡은 빌라 반지하로 스며든 세진은 동철과 원치 않는 이웃이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람과 사람으로, 남자와 여자로 여러 사연을 만들어간다.
배경은 눅진하건만 유머라는 당의정이 스크린을 감싼다. 영화는 시종 웃기면서도 스산하다. 만만치 않은 시나리오와 연출이 추레한 현실과 유쾌한 웃음을 한데 묶는다.
초반부 자신의 패거리가 관리하는 업소에 '출동'한 동철이 던지는 한마디가 이 영화의 내공을 가늠케 한다. "어느 놈이 진짜 임페리얼 맛을 안다고 그러는 거야?" 분식집에서 마주친 동철이 세진에게 던지는 말도 쉬 지나칠 수 없다. "우리나라 백수들은 너무 착해. 그게 다 지 탓인 줄 알아.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러는데 말이야."
어느 날 세진이 취업 때문에 농락을 당한 뒤 남녀는 술을 나눠 마신다. 동철이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안되겠지?" 세진이 "돼요"라고 답하자 카메라는 부끄러운 듯 방을 물러나 창문을 바라본다. 서로 연심을 품고 잠자리를 치렀어도 다음날 두 사람의 관계는 서먹하기만 하다. 이유는 단 하나. 남자는 깡패이고, 여자는 대졸 취업 준비생이기때문이다.
세진은 깡패라는 이유로 동철과 거리를 두려 하고, 그를 아버지에게 소개시킬 때 신분도 속인다. 그러나 한물간 깡패나 직장을 잡지 못한 88만원 세대나 영화 속 살아가는 모습은 오십보 백보다. 일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동철은 두목에게 떠밀려 나이트클럽 전단지를 붙이러 다니고, 세진은 편의점에서 용돈 벌이를 한다. 동철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 세진은 영양제로 버틴다.
취직을 위해 온갖 수모를 견뎌내야 하는 세진의 사연은 특히 눈물겹다. 짓궂은 면접관이 노래와 춤을 시키자 어정쩡한 목소리와 동작으로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를 부르는 정유미의 연기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88만원 세대의 서러운 현실을 카메라는 그렇게 면밀히 포착해낸다. 이 영화가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비장미도 없고 '가오'도 없는 동네 깡패들의 모습은 현실적이라 오히려 신선하다. 근거 없는 낙관도, 서투른 비관도 하지 않아 더욱 정이 가는 영화다. 현실을 껴안은 그럴싸한 상업영화가 오랜만에 나왔다. 감독 김광식.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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