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늦은 뙤약볕이 내리쬐던 7일 전남 장흥군민회관 앞 뜰에는 농민들이 모여 있었다. 머리띠를 두른 풍경은 이맘때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농업재해보상...'문구가 적힌 머리띠 아래에는 어두운 표정들이 대부분이었다.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 준비에 한창이어야 할 시기에 그들은 하늘이 아쉬운 냉해 때문에 또다시 '투쟁'을 외치며 아스팔트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곳 바닥에 뿌려진 농업 관련 신문 1면 제목은 이랬다. '기상대란,침몰한 농민호를 인양하라-서울만 모르는 이야기'
5월초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는 급하게 상품 진열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예년 같으면 과일 코너 입구를 차지할 참외와 수박이 뒤로 숨고 미국산 오렌지와 칠레산 포도를 전진 배치시키는 것이었다. 가격표를 확인한 소비자들은 몇 차례 머뭇거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오렌지를 집었다. 서울의 냉해 피해는 그것뿐이었다.
4월 낯선 눈 풍경에 이국적 분위기를 즐기며 지내던 시기 농민들은 야속한 땅만 내려다보며 한숨을 몰아 쉬었다. 차가운 땅속 씨앗은 싹도 피어보지 못했고 고개를 내민 싹은 하얗게 얼어 죽 어 갔다.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10년생 복숭아 나무는 지난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해 시커먼 몸통만 남아 뿌리 채 뽑아버려야 했다. 매년 5,000만원 매출을 올리던 과수원은 매년 200만원의 도지(토지임대료)만 숙제로 남기고 묘목만 삐죽이 목을 내밀고 있었다. 이들 묘목에서는 4년 후에나 복숭아를 만날 수 있단다.
냉해 피해는 농작물만이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차고 넘쳐야 할 벌통의 꿀도 한 마리가 아쉬울 정도로 숫자가 줄어들었다. 경기 포천시 내촌면에서 32년째 양봉업을 해온 윤화현씨도 예년 같으면 채밀(採蜜)을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 봄에만 다섯번 정도 꿀을 수확해야 정상이지만 올해는 이상저온으로 전국의 아카시 꽃이 동시에 필 것으로 예상돼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벌꿀은 가축으로 분류돼 피해보상에 대한 문의에 농림부는 "가축에 대한 냉해 피해보상 사례가 없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30년 전의 기후와 비슷하다는 올해 기후가 반가운 회복은 분명 아니다. 잠시 뒷걸음 친 온난화의 반격이 어떻게 다가올지 두렵기 때문이다.
사진·글=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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