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27일 오후 11시. 경기 포천의 한 석유 저장창고 주변. 거대한 탱크로리가 어둠을 틈타 움직이기 시작하자 사방에서 불빛이 쏟아지고 눈깜짝할 새 경찰 수 십명이 탱크로리를 에워쌌다.
운전사는 꼼짝없이 붙들렸고 저장 창고에서 유사석유를 만들던 일당도 붙잡혔다. 이날 현장에서 압수한 양만 6만 리터, 1억2,000만원어치였다. 경찰과 함께 현장 단속에 나선 한국석유관리원 동부지사 관계자는 "6개월 동안 잠복을 통해 유사석유 제작현장을 확인했다"며 "기름 값이 비싸지면서 벌받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유사석유를 팔겠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2. 지난달 22일. 강원 춘천의 한 펜션. 한국전력 강원지부 현장 직원이 건물 외벽에 달린 전력량계를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 "얼마 전 숙박업소에서 심야에만 쓰도록 돼 있는 난방용 전기를 낮에 1층 식당에서 쓰다 적발됐다"는 이 직원은 "값싼 농사용 전기를 일반 가정용으로 쓰는 등 계약 위반 건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름 값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면서 가짜 휘발유를 만들어 팔거나 전기를 속여 쓰려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10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리터당 휘발유 값은 한 달 넘게 1,700원을 이어가는 가운데 일부 주유소는 2,000원을 넘어서고 있다. 주유소나 유류 대리점 입장에서는 전체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행세, 교육세, 교통세 등 유류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어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
올 들어서만 3월까지 400건 넘게 적발됐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특히 1997년부터 주유소 자율로 휘발유 가격을 정하도록 하면서 한 주유소가 유사 석유를 팔면 경쟁 관계의 주변 주유소도 덩달아 유사 석유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기를 속여 쓰는 상황도 비슷하다. 한전 관계자는 "현재 100가구 당 1가구는 전기를 속여 쓰고 있다"며 "특히 한 동네에서 처음 한 두 집이 다른 용도로 쓰면 이웃들도 불법에 동참하곤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의 가로등, 군부대의 전기 등도 잘못된 용도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수법도 갈수록 치밀해 지고 있다. 보통 보일러용 등유는 경유와 구별하기 위해 빨간색 착색제와 식별제를 넣는데 최근 이 착색제, 식별제를 뺀 등유를 경유에 섞어 판 신종 유사 경유가 등장해 관리원을 긴장시키고 있다. 관리원 관계자는 "아예 특수 기계를 만들어 착색제, 식별제를 걸러냈다"며 "지난해 연말부터 광주 전남에서만 수 십 곳이 신종 가짜 휘발유를 팔다 적발됐다"고 말했다.
게다가 속이려는 이들은 갈수록 똑똑해 지고 있다. 5만 리터 안팎 용량의 일반 휘발유 탱크안에 5분의 1 정도 크기의 새끼 탱크를 달고 두 탱크에 따로 관을 단 다음, 보통 땐 가짜 휘발유 탱크에서 기름을 빼 팔다 단속이 뜨면 발로 슬쩍 스위치를 누르거나 리모컨을 조작해 정상 휘발유를 넣고 있다.
책상 위 전자계산기속에 리모컨을 숨기는 등 좀처럼 찾기 힘들게 머리를 쓰고 있다. 전기 사용량을 속이려는 이들은 갈수록 대범해지고 있다. 한전 강원본부 관계자는"아예 설비를 땅 속에 묻거나 야산이나 비닐하우스 등 찾기 힘든 곳에 옮기고 있다"며 "특히 인적이 드문 곳에 펜션 등 숙박 시설이 늘면서 계약 위반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전과 석유관리원은 최첨단 시스템으로 맞서고 있다. 석유관리원은 2005년'차량탑재형 연료검사장치(NIR)'를 개발했다. 관리원은 일반 차량과 똑같이 생긴'비노출차량'안에 장치를 단 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은 다음 가짜 여부를 즉석에서 검사할 수 있도록 했다.
관리원 관계자는 "기습 점검을 통해 지능적인 눈속임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 일본 등에서 특허를 받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석유관리원은 지난해 10가지 이상의 실험 장비를 갖춘 7억원이 넘는 이동분석 차량을 들여왔다. 조만간 이중탱크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산업용 내시경, 리모컨 사용 여부를 파악할 전파탐지장치 등도 도입할 예정이다.
한전은 지난해'전기 위약 탐지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는 한전 본사가 '위약 ZERO'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에 따라 만들어 진 것으로 가정집을 포함, 전국 모든 전기 사용 주체의 전기 사용 패턴을 정확히 분석한다. 이중 일정한 패턴을 벗어난 대상을 골라낸 후 다시 한 번 정밀 분석해서 계약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시스템 개발에 참여한 한전 강원지부 박종욱 팀장은 "전에는 현장 단속을 나가도 객관적 근거가 부족해 고객들이 버티면 발길을 돌려야 했다"며 "이제는 발 뺌을 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한전측은 앞으로 시스템을 보완해 단순한 계량기 조작도 적발할 계획이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를 부정하게 쓰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장애가 일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전 등 안전 사고 우려도 있다"며 "계약 위반을 하면 반드시 적발된다는 인식을 널리 퍼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춘천=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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