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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판과 추임새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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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판과 추임새의 문화

입력
2010.05.10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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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 국립극장에서 판소리 을 관람했다. 차세대 소리꾼으로 주목받는 염경애 씨의 소리는 나이에 비해 잘 여물었고 구성지며 힘이 있었다. 5시간짜리 완창 공연을 3시간대에 맞추느라 '와상 우에 자리를 펴고'로 시작하는 계면조의 대목부터 시작했다. 통성으로 내지르는 쩌렁쩌렁한 상청은 '실종된' 봄날의 우울함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창자도 잘 했거니와 청중들의 태도도 수준급이었다.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찬 객석 여기저기서 얼씨구! 얼쑤 잘한다! 그렇지! 어이! 등 추임새가 이어져 창자의 흥을 돋우었다. 기침소리 내는 것도 조심하는 서양음악 공연에 비해, 창자와 호응하는 추임새는 처음엔 멋쩍고 어색한 기분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고 멋스러워졌다.

유난히도 기복이 심했던 올 봄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게 판소리의 매력이다. 판소리는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쓴 이야기를 창자의 목소리로 풀어낸다. 물소리, 바람소리, 심지어 귀곡성(鬼哭聲) 등 효과음에 해당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창자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1인 멀티 예술 장르다. 판소리에는 희로애락이 있고, 해학과 풍자, 교훈과 웅장함까지 들어 있다.

심포니 오케스트라처럼 다양한 악기가 내는 화음이 없고 오페라처럼 화려한 무대 장치나 소품도 없이 오직 창자와 고수 둘만의 예술행위로 객석의 청중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예술 장르다. 서구의 음악 감독들은 판소리를 새로운 예술 장르로 분류하는데, 문학 음악 연극의 요소가 어우러진 복합 장르이기 때문이다. 사설, 음률과 너름새가 통합된 독특한 형식의 판소리는 문화예술의 한류 브랜드로 앞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 문화는 '판'의 문화다. 비단 판소리뿐 아니라 춤판, 좌판, 씨름판, 정치판, 공사판, 그리고 다소 부정적이긴 하지만 노름판, 난장판, 먹자판, 놀자판이 있다. 가족끼리 윷놀이를 할 때는 훈수를 두면서 왁자지껄해야 맛이고, 고스톱을 칠 땐 광을 팔고 고리를 뜯는 게 재미다. 판을 벌리고 상호작용을 하는 추임새 문화가 몸에 뱄다. 판을 깨면 흥도 사라진다. 판과 함께 하는 추임새는 순기능적일 경우 효과는 배가되고 폭발적이다. 소위 '신'이 난다. 노래를 불러도 신명나게 부르고 응원도 신명나게 한다. 당일치기 꽃놀이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관광 춤'까지 추어야 비로소 신나게 논 것 같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흐르는 흥과 끼, 신명이 오늘날 전 세계에 퍼지는 한류의 바탕이기도 하다. 2006년 월드컵 경기 때 독일 언론은 '응원은 한국이 금메달'이라고 했다. 광장마다 거리마다 모여 700만 명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같은 구호를 외치는 이런 민족은 유사 이래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듯 우리는 판을 벌리면 신명을 발산하는 민족이다.

바야흐로 정치판의 계절이 돌아왔다. 곧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광역·기초 단체장과 의회의원, 교육감 등을 뽑는 큰 판이 벌어진다. 문제는 어떤 인물을 뽑느냐다. 민초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신명을 불러일으켜 얼씨구 잘한다! 란 추임새를 받을만한 인물을 뽑아야 한다. 국민과 소통이 안 되고 엇박자로 노는 정치인들, 신명이 없고 국민 마음에 갈등과 시름만 깊게 하는 정치인은 뽑지 말아야 한다. 제발 이번부터라도 국민과 어우러져 소통하고 추임새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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