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한층 커진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내정ㆍ경제협력ㆍ국제정세 문제 등에서 양국간 공조를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핵실험과 천안함 침몰 등으로 국제적 고립에 처한 북한의 경제ㆍ외교 분야에 상당한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내용들이다.
과거에도 북한은 김 위원장의 방중 이후 개혁ㆍ개방으로 나아갈 조짐을 보였으나 대부분 불발에 그쳤다. 김 위원장은 2006년 1월 우한(武漢) 광저우(廣州) 선전(深圳) 등 중국 남부의 대표적 개방지역을 8박9일간 둘러보고도 오히려 시장 통제를 강화하는 듯한 조치를 취했다. 상하이의 발전상에 감명 받아 "천지개벽" 발언을 한 2001년 방중은 이듬해 7ㆍ1경제관리개선조치, 신의주 경제특구 발표 등 제한된 개방정책으로 이어졌지만 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북한의 잇단 개혁 시도 좌절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제정세의 흐름, 특히 북미관계의 불안정성에 기인한 측면이 많았다. 미국은 2006년 달러 위조를 문제 삼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를 통해 북한의 돈줄을 막아버렸고, 2002년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을 제기한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이후 핵실험 정국이 조성되면서 신의주 개발은 중단됐다.
북한은 이런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미국 등 서방 국가를 염두에 둔 개혁ㆍ개방정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코스가 다롄(大連), 톈진(天津) 등 북한과 현실적으로 경협 가능성이 높은 동북3성 지역에 집중된 점, 천안함 문제와 북중 관계를 철저히 분리하려는 중국의 태도 등은 북한에 '기댈 곳은 중국 뿐'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
중국을 상정한 북한의 '원 타깃(One Target)' 전략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과거에 비해 효율성을 높인 방중 내용을 근거로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있는 반면 체제 안정을 우선시하는 북한 권력의 속성상 김 위원장의 방중을 정치적 행위로 평가절하하는 해석도 있다. 한 전문가는 "김 위원장은 외교 문제에서는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경제협력 분야에서는 2조 달러가 넘는 중국의 막대한 외환 보유고를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적극적 구애는 중국에도 남는 장사란 평가가 많다. 중국은 자국의 실리(동북3성 개발)를 챙기면서도 북한을 우대하는(북중관계와 핵문제 분리) 두 갈래 전략을 적절히 병행하며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설득할 가능성이 높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북한이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을 설립해 외자유치 창구를 공식화한 것도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비난을 피하기 위해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중국의 입김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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