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만 주면 뭐든지 할 사람" '극비의 임무' 등 첩보 무성
탈레반 활동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온 파키스탄 출신 안와르 울하크는 현재 출입국관리법 위반과 협박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기소 내용만 보면 별다를 것 없는 불법체류자일 뿐이지만, 수사당국은 7년간 이슬람 성직자(이맘)로 활동해온 그가 무장 이슬람 반군인 탈레반과 연루돼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자동차 폭탄테러 미수 사건의 용의자가 탈레반 훈련을 받은 파키스탄인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아프가니스탄 파병과 G20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있는 한국도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안와르는 정말 탈레반 테러조직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한국은 탈레반 테러로부터 얼마나 안전한가. 파키스탄 현지취재를 통해 이 두 가지 궁금증을 풀어봤다.
천안함이 침몰한 3월 26일 밤. 기자를 태운 항공기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상공을 날고 있었다. 착륙 예정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항공기는 아직 모래폭풍과 싸우느라 심하게 요동쳤다. '터뷸런스'라는 기내 방송은 신음소리, 구역질 소리에 묻혔다. 항공기는 결국 기수를 400km 남동쪽의 제2도시 라호르로 돌려야 했다. 하루 전 기자는 안와르의 사진 한 장과 그의 주소가 적힌 수첩만 손에 들고 '아시아의 발칸' 파키스탄으로 향했다. 그러나 안와르 울하크의 행적을 쫓는 취재는 처음부터 거부당한 느낌이었다.
◆이슬라마바드= 우선 그가 정말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기자가 손에 쥔 정보는 그의 고향이 북서부 스왓지역 근처 바타그람이라는 게 전부였다. 바타그람도 작지 않은 도시라 무작정 뒤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틀 수소문 끝에 고향이 같은 이맘이자 중견 정치인인 모라나 모하마드 쉐리프 하자르위를 찾았다. 그는 기자가 내민 사진을 보자 한참을 확인한 뒤 "안와르 울하크가 맞다"며 가족과의 만남도 주선하겠다고 제안했다. 한 탈레반 전문가는 "보통 가족들은 스스럼없이 거짓말한다"며 만류했지만,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전형적인 무슬림 모습인 안와르의 부친 모하메드 잔(65)은 아들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두 아들은 다른 파키스탄 사람들처럼 돈을 벌려고 한국에 갔다"며 이미 사망한 지아 울하크마저 한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안와르가 본인이 이슬람 종교학교(마드라사)를 나온 지아이며, 2001년 입국 때는 동생 안와르의 여권으로 입국했다고 주장했던 것과도 다른 것이다. (그러나 4월6일 재판에서 안와르는 본인이 지아가 아님을 자백했다. 검찰과 변호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바타그람= 고향 사람들의 평가는 달랐다. 이웃 주민과 지인들은 안와르가 마드라사는 물론, 일반 초ㆍ중ㆍ고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안와르의 지인들은 "그가 돈을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할 사람"이란 혹평에 대부분 동의했다. 1990년대 말 그와 함께 생활했다는 이슬람 학자 지드 샤라우딘은 "그가 주변에서 돈을 조금씩 빌린 뒤 갚지 않고 야반도주해,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고 했다. 그의 형인 지아 울하크가 수년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증언도 이곳에서 나왔다. 지아 사망 이후 고향에 돌아간 안와르는 2003년 8월 한국에 재입국하기까지 한달 간 깜짝 변신을 준비했다. 지아 이름의 위명(僞名) 수기여권을 정부에서 발급받았고, 가족들은 지아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아 안와르의 신분세탁을 도왔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얼마간 태국에 체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 우스만 칸은 안와르의 사진을 보고는 "8년 전 태국에서 모스크와 마드라사를 짓겠다며 모금한 큰 돈을 가지고 사라졌다"고 증언했다.
◆마르단= 안와르가 '탈레반의 명문학교'인 하카니 마드라사를 나왔다는 첩보성 제보도 들어왔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지도자인 오마르 등이 나온 하카니를 그가 나왔다면 탈레반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만, 안와르와 지아 형제에 대한 기록이나 그들을 기억하는 교사는 찾지 못했다. 안와르는 자신이 하카니 마드라사가 아닌 마르단의 안와르 울름이란 마드라사를 졸업했다고 주장했다. 이 학교는 실제 존재하고 있었으나, 역시 안와르를 기억하는 사람이나 기록은 없었다. 현지 교사들은 "학교를 다닌 사람은 형인 지아 울하크였다"며 "지아는 학식이 풍부하고 공부밖에 모르던 학생"이라고 기억했다.
◆와지리스탄= 안와르가 탈레반 훈련을 받았다는 증언은 고향이나 지인들에게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파키스탄 정부에도 요청해봤지만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돈만 주면 증언해주겠다는 정부군 고급장교와 탈레반 병사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신뢰할 수 없었다. 결국 안와르의 탈레반 의혹을 확인할 마지막 방법은 진짜 탈레반을 직접 접촉하는 것이었다.
탈레반이 활동하는 와지리스탄 등 아프간 접경지대는 파키스탄인도 납치되곤 하는 위험지대여서, 현지 탈레반 전문 언론인을 동원했다. 철저히 익명을 요구한 그는 파키스탄 최대 탈레반인 TTP그룹을 비롯, 시라주딘 하카니 그룹과 가까운 스왓 지역의 파자룰라 그룹, 최근 왕성한 테러활동을 벌이고 있는 타릭 아프리디 그룹 등의 본부를 4일간 직접 방문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안와르를 안다고 나서는 탈레반은 만날 수 없었다. 다만, 안와르의 행적을 분석한 현지인들은 "그가 탈레반 핵심지도부로부터 극비리에 임무를 부여 받았거나 또는 자발적으로 탈레반 선교활동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잇따른 폭탄테러= 취재가 계속되던 4월 7일 밤 10시30분께 이슬라마바드 F7섹터의 유명 상가 근처에서 자동차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숙소에서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이었다. 신문지상에서만 보던 테러가 바로 코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F7섹터는 외국인과 부유층, 일부 대사관이 몰려 있어 안전한 동네로 통한다. 더욱이 이틀 전 페샤와르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벌어져 경계가 몇 배 강화된 직후에 터진 테러였다. 한 현지 교민은 "가뜩이나 아프간 재파병이 얼마 안 남아 교민들의 불안감이 크다. 옆에 오토바이나 차가 붙으면, 폭탄테러가 아닐까 등골이 오싹하다"고 했다. 현지에선 4월 초 아프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일본인 기자도 한국인으로 오인 받아 잡혔다는 흉흉한 얘기가 돌고 있었다.
문준모기자
■ 2007년 한국인 아프간 피랍때 "탈레반에 석방 주선" 제안
파키스탄 현지취재와 국내 정보기관의 조사내용을 종합하면, 국내에서 7년간 이슬람 성직자(이맘)로 활동해온 안와르 울하크(31ㆍ사진)가 탈레반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할 만한 정황은 적지 않다.
우선, 그가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탈레반의 샘물교회 선교단 납치사건 당시 "(자신이) 탈레반 핵심지도자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고, 석방 교섭을 주선하겠다"며 국가정보원에 직접 거래를 제안했던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실제 그는 샘물교회 사건이 있던 시기인 2007년 7월 21일 파키스탄으로 출국해 한달 뒤인 8월 22일 입국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당시 이미 중동의 다른 정보통을 통해 협상이 진행 중인 점 등을 고려해 그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밀수출 개입혐의로 경찰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2001년 첫 입국 당시에는 파키스탄 와지리스탄 지역 탈레반 사령관 중 한명인 시라주딘 하키니의 지령을 받고 한국의 미국시설을 정탐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시인했다. 다만, "2003년 8월 재입국 이후엔 탈레반과 어떤 접촉도 없었다"고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일각에선 안와르가 이슬람 성직자로 활동하면서 수년간 기부 등 사회봉사에 적극 참여해온 것을 근거로 탈레반 의혹에 대한 결백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모금과 기부는 탈레반이 활동자금을 모집하는 주요수단이라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안와르는 재입국한 뒤 자금과 사업을 바탕으로 대구에서 가장 큰 이슬람사원의 유일한 이맘으로 성장했다. 또 파키스탄-한국 친선교류회장을 맡는 등 국제적 활동도 벌였으며, 광복절이 비슷한 한국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3국 모임을 처음부터 주도했다.
그는 모금을 끌어내는 데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자신이 2008년 설립한 한국이슬람복지재단을 통해 지난해 2월 팔레스타인 난민돕기 성금 2,000만원을 모아 적십자사 대구지사에 전달했고, 지난 1월에는 아이티 난민돕기 친선축구대회를 열어 1,000만원을 모금했다. 2005년 파키스탄 강진 때도 성금 1,000만원을 냈다. 이 재단은 파키스탄 이집트 방글라데시 등 6개국 5,000명이 회원으로 활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기부금이 탈레반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은 파키스탄 현지에서도 제기됐다. 대표적 탈레반 전문가인 살림 샤자드 아시아타임즈 파키스탄 지국장은 "UAE, 사우디아라비아뿐 아니라 미국 등 서방에서 탈레반이 자선단체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오랜 방식"이라고 말했다. 자선단체를 활용할 경우 어려운 이를 돕기 위한 성금으로 포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에선 자선단체가 세관당국 등에 자금출입을 신고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사정당국도 안와르가 세운 자선단체의 자금흐름을 추적했으나, 한국을 벗어나면 흔적이 사라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안와르는 돈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는가 하면, 반대파를 협박하고 밀수출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갈등을 빚던 동족에게 "나는 한국에서 탈레반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해 서약까지 하고 입국했다"라고 말한 통화내용이 녹음돼 경찰조사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또한 20여명의 우즈베키스탄 제자에게 지하드(성전ㆍ聖戰) 등에 대해 교육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7월 런던의 연쇄 폭탄테러는 이처럼 이맘으로부터 지하드 교육을 받은 영국 태생 무슬림들의 자생적 테러였다. 안와르의 제자들 역시 수염을 깎지 않는 등 탈레반 관습을 엄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안와르가 이들을 탈레반 조직원으로 포섭하려 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문준모기자
고찬유기자
■ 美전략정보 분석업체 지적/ "안와르, 면밀히 살펴볼 필요 있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차량 폭탄테러를 기도한 용의자가 파키스탄 탈레반과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알카에다와 함께 탈레반 경계령이 내려졌다. 이에 앞서 미국의 전략정보 분석업체 스트래트포(Stratfor)가 국내에서 기소된 안와르 울하크의 탈레반 의혹을 분석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패러다임에 들어맞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트래트포는 안와르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라면 2008년 인도 뭄바이 테러 당시 데이비드 헤들리의 역할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미국 태생의 데이비드 헤들리는 166명이 숨진 인도 뭄바이 호텔 테러를 위한 사전 정찰을 한 혐의로 기소된 인물이다.
스트래트포는 알카에다, 탈레반 등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주요 작전을 펴온 사실과, 9ㆍ11테러 당시 일본과 한국도 공격 대상이었다는 얘기도 함께 전했다.
또 한국에는 이슬람권인 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와 학생이 많아, 안와르와 같은 존재가 매우 특이하진 않다고 했다. 탈레반은 힘이 분산돼 있어 어느 한 조직이 안와르에게 임무를 부여해 한국에 파견했을 것이란 점도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안와르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스스로 탈레반이라고 말한 점은 의심스런 대목이라고 보았다. 2003년 이후 17차례 한국을 드나들고, 신분을 노출시킨 건 탈레반 답지 못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안와르가 7년간 수시로 파키스탄에 돌아가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거나, 문제의 신분노출이 수사기관의 대응 잘못일 개연성은 열어두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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