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세 차례나 옷을 바꿔 입었다. 그것도 모자라 1년이 더 흘렀다. 한국 육상이 제자리 걸음은커녕 뒷걸음질 친 세월이다. 육상 남자100m 한국기록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1979년 멕시코시티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서 서말구가 세운 10초34의 유리벽을 넘지 못하고 31년 동안 깊은 잠에 빠진 한국육상. 그 사이 한국인 체형으론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수영, 스피드, 피겨스케이팅에서 올림픽 금메달이 쏟아졌다. 무관심과 비인기 종목이란 그늘아래 체형 운운하며 '면피'하던 육상이 기댈 변명거리도 사라진 셈이다.
한국 스포츠의 유일한 '지진아'로 비유되는 수모를 당하던 육상이 드디어 용틀임을 할 기세다. 육상 관계자들은 "이번만은 다르다"며 믿어달라고 입을 모은다. 일단 안팎의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개최국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육상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지난달 20일에는 기준치(풍속2m)를 훨씬 초과하는 뒷바람(풍속4.9m) 탓에 비록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김국영(19ㆍ안양시청), 여호수아(23ㆍ인천시청), 전덕형(26ㆍ경찰청)이 나란히 10초17, 10초18, 10초19를 찍어본 경험이 있다. 육상계는 이를 두고 선수들의 자신감 회복이란 측면에서 유의미한 기록이라고 평했다.
장재근 국가대표 단거리 기술위원장은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올 6월까지 100m기록을 반드시 깨겠다"고 약속(?)했다. 장 위원장이 장담한 100m 기록경신을 위한 첫 번째 무대인 제39회 종별 육상선수권대회가 10일~14일 창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다. 종별선수권대회는 국가대표를 비롯한 중ㆍ고교와 대학, 실업팀의 에이스들이 총 출전해 166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루는 무대다. 하이 라이트는 단연 대회 3일째 열릴 100m레이스다.
현재 한국기록에 가장 근접한 선수는 김국영(10초47)과 여호수아, 전덕형(이상 10초48)이다. 이중 김국영의 페이스가 놀랍다. 중2때부터 그를 지도한 강태석 감독(안양시청)은 "(김)국영이는 선천적으로 발목과 무릎이 좋고 초반 30m까지 폭발적인 순발력이 강점"이라며 "동계훈련을 통해 초반에 탄력 받은 스피드를 막판까지 유지하도록 집중 보완했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단거리 이종윤 코치도 "100m선수들은 300m를 달리게 했고, 200m선수들은 400m를 뛰게 하는 등 근력위주로 훈련량을 늘렸다"며 막판 스피드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또 이번 대회 결과에 따라 19일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에서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9초58)와 함께 100m레이스에 나설 주자를 결정하겠다고 귀띔했다.
대회 첫째 날 남자 400m에 출전하는 박봉고(구미시청ㆍ46초16)의 상승세도 관전 포인트다. 경북체고 재학 중이던 지난해 대전에서 열린 제90회 전국체전에서 3관왕(200m, 400m, 1,600m계주)에 올랐던 자신의 실업무대 데뷔전이기도 하다. 박봉고는 94년 손주일이 세웠던 45초37초에 도전한다. 박봉고는 또 200m에도 출전, 85년 장재근의 한국기록(20초41)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대회 이틀째인 11일에는 장대높이뛰기의 여왕자리를 놓고 임은지(부산연제구청ㆍ4m35)와 최윤희(SH공사ㆍ4m25)의 라이벌전이 펼쳐지고, 13일에는 지난해 23년 만에 여자 육상 200m 한국기록(23초69)을 갈아치운 김하나(안동시청)가 자기 기록 경신에 나선다. 대회 마지막 날인 14일에는 마라톤 기대주 김민(건국대)이 트랙 최장거리인 1만m에 나서 대미를 장식한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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