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희는 이겼지만 한국은 졌다.
한국 펜싱의 간판 남현희(29∙성남시청)가 ‘펜싱여제’ 발렌틴 베잘리(37∙이탈리아)의 아성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남현희는 9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SK텔레콤 국제그랑프리선수권대회 여자 플뢰레 단체전 6라운드에서 시종일관 여유 있게 경기를 운영한 끝에 베잘리를 스코어 9-2로 완파했다.
남현희는 잇따라 정확하게 몸통을 찔러댔고, 베잘리는 경기 중에 잠깐 주어지는 휴식 때 ‘이길 수 있다. 이긴다’라며 자기암시에 열중하기 바빴다. 베잘리는 제대로 된 공격을 2번 밖에 성공하지 못하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베잘리는 올림픽 4연패, 세계선수권대회 5연패를 이뤘으며 지금까지 그랑프리와 월드컵을 70여 차례 우승해 여자 펜싱의 지존으로 불리는 선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여자 플뢰레 결승에서 접전 끝에 남현희를 꺾어 국내 팬들에게도 낯익은 검객. 남현희는 지난 3월 말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그랑프리에서 베잘리를 난생처음으로 꺾었으나 지난 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그랑프리에서는 4강전에서 졌다. 3월 그랑프리와 이번 대회를 보면 이제는 남현희가 베잘리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게 펜싱계의 중론이다.
남현희는 “베잘리를 꺾을려고 공부했는데 그런 것들이 이번에는 잘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베잘리는 경기 후 “이번에는 내가 졌다”며 “오늘 맞대결에서는 도저히 칼이 닿지 않았고 정상적인 내 컨디션을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시간이 흘러버렸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나 한국은 남현희 활약에도 불구하고 뒷심 부족으로 41-45로 역전패, 2005년 독일 라이프치히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사상 두 번째 세계 정상 등극에 실패했다.
김종석기자 lef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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