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글로벌 금융시장에 러시아 모라토리엄이라는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발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주요 외환조달원이었던 석유, 가스 등 원자재 가격이 급락했고, 1992년부터 재정적자가 지속되면서 재정의 30%를 국채상환에 사용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여기에 아시아 외환위기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대규모의 외화자금이 이탈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주목할 점은 외환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인 아시아 국가들이 아닌 러시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는 것. 이는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글로벌 자금의 악순환이 시작될 경우 가장 약한 고리가 먼저 끊어질 수밖에 없는 금융시장의 속성 때문이다.
마치 지금 그리스의 상황과 비슷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들이 아닌 그리스가 재정 적자 누적과 금융위기 여파로 갑자기 위기를 맞았다. 이번 위기에서는 그리스가 가장 약한 고리였던 것. 우리도 성장과 리스크를 적절히 조절하는 금융정책으로 언제 올지 모를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지난주 말 그리스에 대한 1,100억 유로의 자금지원에 대해 유럽연합의 최종 승인이 났지만 유럽과 미국 증시는 급락세를 이어갔다. 1,100억 유로로는 부족하며,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위기는 아직 진행형이라는 이유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포르투갈,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즉 'PIGS' 정부와 금융기관 등이 해외금융기관에 지고 있는 대외채무는 2009년말 현재 3조달러에 달한다. 이중 2조3,000억달러에 유럽계 금융기관이 노출돼 있으며 대부분을 영국과 독일, 프랑스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PIGS국가가 잘못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서유럽 금융기관이다. 이미 공적 자금을 받은 바 있는 금융기관에 또다시 공적 자금 투입이 필요해질 수 있는 상황인데, 그렇게 될 경우 막대한 재정과 유동성을 쏟아 부어 경기회복의 불씨를 살린 것이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유럽 국가들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보다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지난 주말 유럽 및 미국 증시 하락으로 이번 주 초반 국내 증시의 변동성 확대는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디폴트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낮고 ▦한국은 직접적인 피해가 거의 없으며 ▦사상 최고치에 달하는 외환보유고 등을 감안할 때 현 수준에서 주식투매에 동참하는 것은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다만 신규 매수는 가격조정이 마무리되고 기간조정에 들어선 이후로 늦추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판단된다.
김성봉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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