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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의 꿈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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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의 꿈은 어디에

입력
2010.05.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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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한 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하지만) 학비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앞을 가린다…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중략).

봄이 오는 캠퍼스 잔디 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편지를 쓰는/ 학생들을 뒤로 하고, 3월10일 고려대학생 김예슬이 이 같은 대자보를 붙이고 대학을 떠났다. 김예슬은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대학이기에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며 절절한 눈물과 함께 대학을 뒤로 했다.

김예슬과 김연아의 대학

그 대자보 전문에 눈물을 흘린 교수도, 학생도, 학부모도 많았지만 파장은 천안함 사태에 묻혀 어느덧 잊혀져 가고 있다. 떠날 때는 말없이, 조용히 떠날 수도 있었지만 구태여 대자보를 붙이고 교문 앞 시위를 한 까닭은 자신이 나중에 약해져서 다시 받아 달라고 교문을 들어설까 두려워서 그랬다고 김예슬은 말했다.

두 달 뒤인 5월 4일, 역시 고려대생인 김연아가 뉴욕 한복판의 레드카펫에 섰다. 시사주간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부문 2위에 선정돼 맨해튼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파워풀한 유명인사들'과 나란히 자리했다. 김연아는 이에 앞서 4월에는 고려대를 찾았다. 등교가 아닌 방문길에 총장을 만나, 면담이 아닌 환담을 나누고, 학장의 직접 안내로 강의실에 들어갔다가 10분만에 떠났다. 김연아가 언제쯤 다시 학교에 나타날지 는 같은 과 학생도, 교수도, 아마 자신도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졸업에는 당연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는 최근 TV 토크쇼에서 작년에 F학점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어이가 없다. 작년에는 과제물 같은 걸(?)로 학점을 땄다"고 말했다. 학점을 위해 제출한 과제물 같은 것(?)이 무엇인지 순간적으로 나는 당혹스러웠다. 지난해 3월 김연아가 생애 첫 월드챔피언 타이틀을 따냈을 때 고려대는 입학한지 한 달도 안된 김연아를 모델로 '고려대가 세계의 리더를 낳았습니다'는 문구로 학교 홍보 광고를 일간지에 실었다.

이제 더 이상 대학은 대학이 아니다. 시장주의와 경쟁구도에 매몰된 대학은 이제 글로벌 자본의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고 있다. 오래된 사학을 인수한 재벌 총수는 대학을 오로지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기 위한 기구쯤으로 정의하고 있다. 학문의 최후 보루쯤으로 인정되던 인문학마저 신자유주의적인 자유경쟁과 시장논리에 존재가치가 매몰된다. 이제 시장논리에 자유로울 수 있는 공공의 영역은 우리 사회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문화와 예술은 물론이고 대학마저도 시장의 신(神)에게 백기 투항하기를 강제 당하고 있는 것이다.

돈에 이성이 마비된 사회

한때 유행한'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의미하듯 우리 사회의 지상 목적은 경쟁력 있고 돈 잘 버는 인간으로 좁혀졌다. 기업자본주의의 경쟁 방식이 한국인의 일상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일찍이 절대 권력의 자리에 섰던 노무현 마저 '권력은 이제 시장으로 완전히 넘어갔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돈을 경멸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누구도 돈을 경멸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다. 돈은 인간의 품위 유지와 자유의 필요ㆍ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돈 버는 사회를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미쳐가는 사회를 경고하고 싶다. IMF와 최근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는 사회적 이성(social rationality)까지 마비되는 순간에 와 있다. 청춘마저도 스펙 쌓기에 휘둘린 채 시장주의와 무한경쟁의 늪으로 빠지고 있는 지금, 우리를 적시는 고귀한 꿈들은 어디에 있을까.

김동률 KDI연구위원·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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