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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지원으로 문신제거 시술받은 10대들/ "문신 지우니 자신감…경찰관 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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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지원으로 문신제거 시술받은 10대들/ "문신 지우니 자신감…경찰관 될래요"

입력
2010.05.0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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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2,000도의 레이저가 살갗 위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지글지글 타는 냄새가 났다. 팔뚝을 뒤덮은 검푸른 상처에 하얗게 물집이 솟아올랐다. "많이 아프지"라는 의사의 걱정에 녀석은 짤막하게 답했다. "괜찮아요." 고통은 몸이 말했다. 오른 손은 배를 움켜쥐고, 왼 손은 다른 이의 손을 잡은 채 간간히 눈을 질끈 감았다. 표정은 자못 비장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작은 한숨을 내쉰 녀석은 조용히 상처를 훑어봤다. 녀석의 왼쪽 팔뚝을 감싸 안았던 검푸른 용과 산 그림은 사라지고 대신 붉게 달아오른 레이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고열에 타버린 살갗은 이후 고름을 토해낸 뒤 딱지로 변하게 되고, 그 딱지가 떨어지면 새 살이 돋고 문신도 사라질 것이다.

7일 오후 청소년 10여명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문신제거 전문병원을 찾았다. 지난해 12월부터 아름다운재단과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쉼터)가 시작한 '청소년 문신제거 지원사업'의 수혜자들이다.

문신은 새기기는 쉽지만 지우기는 어렵다. 크기와 깊이에 따라 제거비용이 10만원부터 수백만원까지 든다. 등을 가득 메우거나 갖가지 색으로 꾸민 문신은 지우려면 500만원 이상 들뿐 아니라 치료도 2년 가까이 받아야 한다.

쉼터의 김효정 간사는 "문신을 한 청소년 대부분이 뒤늦게 후회해 지우려 하지만 비용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재단은 문신 청소년들의 사연을 공모해 제거비용을 1인당 최대 500만원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제 몸을 자기 뜻대로 꾸미는 일을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문신을 조직폭력배나 비행 청소년들의 일탈쯤으로 여기는 사회의 시선을 무시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문신은 청소년들의 학교생활과 사회진입을 가로막는 장애다.

철없는 호기심과 충동에 덜컥 새긴 문신이 10대 청소년에게 남긴 상처는 깊었다. 몇 년 전 현태(18ㆍ이하 가명)는 친구들과 함께 불법(병원에서 해야 합법)으로 등 한쪽에 문신시술을 받았다. 담임 교사의 추상 같은 질타에 질려 방황하던 끝에 고2때 학업을 포기했다. 다시 학업을 시작하고 싶지만 똑같은 일을 당할까 두렵다. 문신이란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도 쉽지 않았다. "문신이 있으면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도 안 받아주거든요." 그래서 이 참에 문신을 지우기로 했다.

보연(19)이의 오른쪽 팔에는'我'(아)자가 옅게 남아있다. 보연이는 세 살 때 부모에 의해 복지관에 맡겨졌다. 10년 후 재혼한 어머니가 다시 보연이를 거뒀지만 보연이는 가출을 반복했다. 방황하다 스스로 바늘에 먹물을 묻혀 자신의 팔뚝을 콕콕 찔러 문신을 새겼다. 한창 멋 부릴 나이에 문신을 숨기느라 여름에도 긴 팔을 입는다. 보연이는 "나중에 부사관 시험을 보고 싶은데 문신이 있으면 지원조차 못하게 된다"고 눈물을 떨구었다.

문신을 해본 청소년들은 문신을 지우는 일이 희망을 새기는 일이라고들 한다. 올 초부터 문신 제거치료를 하고 있는 A(19)양은 부모의 이혼과 반복되는 가정폭력 등으로 방황하다 2008년 지역청소년쉼터를 찾았다. 방황 중에 스스로 바늘과 먹물로 문신을 새겼다. A양은 "문신을 지우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 커피 등을 만드는 바리스타를 하고 싶다"고 했다. A양은 쉼터의 직업훈련을 통해 자격증 취득에 힘쓰고 있다.

이날 시술을 받은 B(19)군은 최근 중ㆍ고교 검정고시를 모두 통과했다. 내년엔 경찰공무원에 도전할 생각이다. "레이저가 제 팔뚝을 스쳐 지나가며 문신을 지우는 내내 경찰관이 된 모습만 떠올렸어요."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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