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섭 등 지음/창비 발행ㆍ244쪽ㆍ1만5,000원
주가지수가 치솟으면 너나없이 주식시장에 뛰어든다. 기업가치를 따지기는커녕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식을 사들이는 '묻지마 투자'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때는 좀처럼 '투기'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반면 주택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집으로 불로소득을 얻고자 투기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이런 한국사회의 이중성은 집이 자산 축적의 매개물인 동시에 '삶의 거처'라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집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심리는 복합적이다. 모두들 겉으로는 집값이 오르지 않는, 주거가 안정된 사회를 꿈꾼다고 말하지만 내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주택 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인들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이자 골칫거리이기도 한 주택 문제는 교육 문제와 함께 오랫동안 논의돼온 주제다. 그러나 통계나 수치를 근거로 한 계량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논의가 대부분이었고 주택 문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수렴한 경우는 드물었다.
에서 최민섭 서울벤처정보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 김태섭 주거환경연구원 연구실장 등 6명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 각계각층의 구성원들을 면접해 '집'에 대한 생생한 속마음을 들었다. '주거 신분 사회'는 거주지가 거주자의 사회적 지위를 뚜렷이 드러내게 된 한국사회를 의미한다.
저자들이 만난 사람은 신혼시절 전세로 시작했다가 현재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으며 서울시내에 다른 집 2채를 갖고 있는 주부, 무리한 대출을 해서 주상복합아파트의 분양권을 샀고 부동산값 급등으로 엄청난 시세 차익을 남긴 직장인, 신도시 개발로 보상은 받았지만 터무니없이 적은 보상비로 오랜 삶의 터전에서 떠밀려나게 된 원주민, 저소득층 주거대책 시민운동가, 지방의회 의원 , 부동산 중개업자 등 32명이다.
예상대로 집에 대한 생각은 이해 당사자들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가령 부동산값 폭등으로 수십억원대의 자산가치 상승을 경험한 한 강남 주상복합아파트 소유자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이 신경쓰이지 않느냐는 물음에 "미안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여태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답이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반면 강남의 고가 아파트에 전세 살고 있는 한 주부는 "'그 사람들 그냥 앉아서 부자가 돼버렸네. 그때 집 한 채 산 걸로'라는 마음이 든다"며 씁쓸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저자들은 집을 신분 과시의 수단으로 보는 이, 자산 축적의 매개물로 보는 이, 삶의 터전으로 보는 이에 따라 주택 문제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어떤 주택정책이든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전제하면서도 저자들은 이제 주택정책의 초점을 스스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들에 맞출 때가 됐다는 데 뜻을 모은다.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집을 부동산으로 접근하는 이들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부정책을 신뢰하고 투기나 다름없는 방법으로 돈 버는 것을 경원하는 시민들이 스스로를 '바보'라고 자책하고 체념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주민들을 위한 생활 프로그램 마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투기를 위한 가수요자들이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수요자들이 낮은 금리에 안정적 대출로 더 나은 집을 살 수 있도록 틀을 짜야 한다는 것 등이다. 집 있는 자들에게 관대하고 집 가지지 못한 자들을 나 몰라라하는 주택 정책은 그만 둘 때가 됐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단순하지만 아직도 현실에서는 요원해 보이는 메시지가 책을 관통한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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