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머런-브라운, 발빠른 연정 요청 2라운드 시작
영국 보수당이 7일(이하 현지시각) 개표 결과 노동당을 50석 가까운 격차로 따돌리고 총선 승리를 확정지었지만 섣불리 '13년 만의 정권 교체'라는 수식어를 다는 언론은 없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보수당과 노동당의 정권 다툼은 이제 시작"이라는 게 중론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수는 이날 총선 승리를 선언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을 위한 준비가 돼 있으며 (3위를 차지한) 자유민주당에 대해 정부 구성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하는 포괄적이고 열린 제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 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신속하게 안정적 정부를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자민당 선거 공약의 일부를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다. 보수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이른바 '헝(Hung) 의회'가 현실화함에 따라 연정 구성을 놓고 다시 한번 노동당과 일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2당으로 추락한 노동당도 정권 연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영국 선거 관례에 따르면 현직 고든 브라운 총리가 우선적으로 연정 구성을 논의할 수 있다. 브라운 총리가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즉각 자진 사임을 발표하지 않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대신 그는 "연정 구성을 위해 다른 어떤 당과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브라운 총리는 자민당이 주장했던 선거 제도 개혁을 지지한다며 "즉각적인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해 노골적으로 자민당에 구애의 손짓을 뻗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3위 자민당이 주목받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닉 클레그 자민당수가 TV토론을 통해 급부상하면서 돌풍을 일으킨 자민당은 예상에 못미치는 의석수를 가져갔지만 향후 정국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게 됐다. 일단 클레그 당수는 이날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보수당이 우선적으로 연정을 통한 집권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보수당 쪽에 기우는 듯한 입장을 시사했다.
노동당이 자민당 등 소수당을 끌어들여 연정을 구성하지 못할 경우 공은 보수당에게 돌아간다. 다만 보수당 역시 자민당 등과 연정 구성에 실패할 경우 정권 기반이 취약한 소수당 정부를 출범시켜야 한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보수당 주도의 연정이 가까스로 구성된다 해도 보수당 중심의 새로운 영국 정부의 어깨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유럽 재정위기의 낙진' 피해가 우려되는 영국 경제를 정상화시켜야 할 보수당이 헝 의회에 발목 잡혀 연정 구성을 기력을 소진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새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1.6%에 달하는 재정적자가 부메랑으로 돌아와 영국경제를 침몰시키는 상황을 막기 위해 뼈를 깎는 적자 감축에 나서야 한다. 뉴욕타임스는 7일 "만일 새 정부가 영국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런던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헝 의회'란? 과반 다수당 없는 의회
‘헝 의회(Hung Parliament)’는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절대 다수당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영국 만의 독특한 표현이다. 의회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영국에는 양당제가 워낙 뿌리깊게 정착돼 있어 헝 의회는 이례적이다.
영국 언론들에 따르면 1929년 총선에서 헝 의회가 나타났고 45년 이전까지는 빈번하게 ‘헝 의회 출현 후 정당 간 연합’ 구도가 벌어졌다. 가장 최근의 헝 의회는 1974년 2월 총선에서 나타났다. 노동당과 집권 보수당이 모두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자 보수당수인 현직 총리가 소수당을 끌어들여 연정을 구성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에 따라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했던 노동당에서 총리를 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 캐머런은 누구… 온정적 보수 지향, 일찌감치 총리감으로 두각
13년 만의 보수당 총선 승리를 이끈 데이비드 캐머런(43)은 당의 노선을 재정립, 환골탈태시킨 패기의 정치인이다. 시장 중심주의를 앞세운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이후 몰락한 보수당을 온정적 보수주의를 통해 현대화했다. 그는 시장논리를 중시하면서도 부의 분배에도 관심을 가져 노동당 총리였던 '블레어의 상속자'로 불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보수당이 소홀했던 환경과 육아, 복지, 동성애자 권리 등에서 포용력을 보이고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캐머런은 1997년 총리 취임 당시 토니 블레어보다 한 살이 적어, 1812년 42세로 총리에 올랐던 로드 리버풀 이후 최연소 총리가 되는 영광까지 거머쥘 전망이다.
부유한 증권중개인 집안에서 태어난 캐머런은 20여명의 총리를 배출한 명문 이튼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수재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고, 테니스와 산악 자전거를 즐겨 탄다. "기분 나쁠 정도로 특권 계층"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명문가 엘리트여서 서민 정서를 모르는 게 약점으로 꼽힌다.
지난 해 희귀병 오타라하 증후군을 앓던 큰아들 아이반을 잃었을 때 "아들을 들쳐 업고 병원을 뛰어다니며 국민의료서비스(NHS)의 필요성을 깨달았다"며 서민의 어려움에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귀족 셰필드경의 딸 사만다와의 사이에 6세 딸과 4세 아들을 두고 있으며, 9월 막내가 태어난다.
캐머런은 90년대 초 보수당 노먼 라몬트 재무장관 보좌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후 7년간 상업방송사의 홍보담당자로 일하며 정계를 떠났으나 2000년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2005년 당수 경선에서 세련된 이미지와 원고없이 즉석 연설을 척척 해내는 언변으로 당 중진 데이비드 데이비스 의원을 2배 이상 표차로 누르고 승리, 일찌감치 보수당의 총리감으로 꼽혀 왔다. 두뇌회전이 빠르고 열정적인데다, 상황 대처능력도 뛰어나 '듀라셀 토끼'(지치지 않고 구르며 절벽을 기어오르는 건전지 토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