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자 휴일이었던 지난 5일 오후 2시부터 바둑TV스튜디오에서 뜻밖에 2010한국바둑리그 본선대국이 벌어졌다. Kixx의 홍성지와 하이트진로 원성진의 대결이었다. 곧바로 박정환(Kixx)과 이원영(하이트진로)의 대국도 이어졌다. 웬일인가 했더니 다음주에 예정된 대국 중 일부를 앞당겨 둔 것이었다.
2010한국바둑리그 개막전은 하루 뒤인 6일 저녁 7시부터 신안천일염의 안국현과 넷마블 최기훈의 대결로 시작됐다. 전날 일부 대국을 치른 Kixx와 하이트진로의 경기는 원래 13~14일로 예정돼 있지만 원성진과 이원영의 중국리그 출전 일정과 겹치기 때문에 사전 녹화를 한 것이다.
물론 방송은 당초 경기일정에 맞춰 13일에 내보낸다. 국내 최대 규모 단체전으로 전 경기 생중계 원칙을 지켜온 한국바둑리그가 개막전을 치르기도 전에 중국리그의 위력에 눌려 파행을 면치 못한 셈이다.
이뿐 아니다. 6~7일 열린 신안천일염과 넷마블의 개막전에도 중국리그가 큰 영향을 미쳤다. 올해 바둑리그에 첫 출전한 신생팀 넷마블의 주장 이창호가 개막전 오더에서 빠진 것이다. 역시 중국리그 때문이다.
이창호의 개막전 불참으로 소속팀인 넷마블이 엄청난 전력 손실을 입은 건 말할 것도 없고 혹시나 개막전에서 양팀 주장인 이창호와 이세돌 두 거물의 맞대결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던 바둑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또 이 문제로 인해 한국기원과 바둑TV 및 해당팀 관계자들간에 한때 불필요한 불협화음이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 중국 을조리그는 7일부터 15일까지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기 때문에 이창호 원성진 이원영 등 한국 선수들은 모두 6일 중국으로 떠났다. 이밖에 최철한 이영구가 갑조리그에 출전키로 돼 있어 앞으로도 한두 차례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바둑리그는 팀당 6명으로 구성되고 매 경기 5명이 출전해야 하므로 한 팀에서 두 명이 동시에 빠지면 다섯 판 중 한 판은 기권패를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바둑리그 운영규정에는 "세계대회 본선(중국리그 포함) 참가와 일정이 겹칠 경우 각팀 1인 결원 시엔 대국을 강행하며 2인 이상 결원 시엔 결원팀과 상대팀의 대진을 함께 조정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원래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리그에 출전하는 기사에 대해서는 한국바둑리그 뿐 아니라 다른 국내 기전에서도 일체 일정 조정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2008년 한국바둑리그에서 영남일보는 김지석과 윤준상 두 명이 동시에 중국리그에 출전하는 바람에 나머지 네 명으로 경기를 치르고 한 판은 기권패를 당했다. 같은 해 이세돌도 물가정보배와 중국리그의 일정이 겹치자 국내기전을 포기하고 중국리그에 출전했다.
올해부터 중국리그가 대국 일정 조정 대상에 포함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세돌 덕분이다. 한국기원은 그동안 중국리그를 포함한 모든 국제대회 출전기사가 받은 상금 중 일부를 발전기금으로 징수해 왔는데 이세돌은 "기원이 중국리그 출전기사에 대해 아무런 편의도 봐 주지 않으면서 무슨 명목으로 기금을 징수하느냐"며 납부를 거부했다.
실제로 한국기원이 일반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기사에 대해서는 국내기전 대국일정 조정은 몰론 기원관계자가 선수단을 수행해 출입국 수속과 현지 활동을 지원하지만 중국리그 출전기사들은 해당팀과의 계약에서부터 출입국 수속과 현지 숙박 등 모든 걸 선수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지난해 이세돌의 휴직 사태로 이 문제가 크게 불거지자 한국기원은 작년말 '앞으로 중국리그 출전기사는 모두 한국기원을 통해 계약을 체결해야 하며 기원이 대국일정 조정 등의 편의를 봐주는 대신 상금 수입의 5%를 발전기금으로 징수한다'고 규정을 바꿨다. 이에 따라 중국리그 일정이 국내기전 일정과 겹칠 경우 해당 기사 뿐 아니라 상대선수까지 '자동적으로' 일정 변경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국내 프로기사들이 중국리그에 출전하는 걸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내 기전에 비해 상금 수입이 많을 뿐 아니라 중국 강자들과 비공식적으로 기량을 겨뤄보는 부수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한국기원 공식기록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리그와 국내기전 일정이 겹칠 경우 번번히 국내기전 일정이 뒤바뀌는 현실을 바라보는 국내 바둑팬들의 마음은 무척 씁쓸하다.
게다가 5일 열린 두 대국은 바둑TV 시청자들에게 13일 밤에 녹화방송되지만 한게임 등 주요 인터넷바둑사이트를 통해선 이미 생중계됐다. 대국 결과는 Kixx의 홍성지와 박정환이 불계승했다. 한국기원의 대국일지에도 당연히 5일 대국한 것으로 기록됐다. 실로 개막전 아닌 개막전이 된 셈이다.
많은 팬들의 관심 속에 즐거운 마음으로 개막 축포를 쏘아야 할 한국바둑리그가 중국리그의 그늘에 가려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바둑리그가 개막전부터 적지 않은 '황사 피해'를 입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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