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말라야 산자락에 맺힌 투명한 눈빛
티베트 방랑 / 후지와라 신야 지음
여행이 '업'인 작가 후지와라 신야의 티베트 소요기다. 여기서 업(業)은 일(work)이 아니라 카르마(karma)다. 숙명처럼 세상을 떠돌며 인간의 풍경을 포착하는 후지와라의 투명한 눈빛이 히말라야 산자락에 멎어 맺힌 상(像)이다.
볕에 가열돼 자글대는 대지와 부시도록 청명한 하늘, 그리고 그 사이에 선 표정을 지운 인간이 책의 페이지를 채운다. 방랑의 시간은 1980년대 초. 그러나 후지와라는 이때 이미 어떤 '본원적인' 것에 대한 상실감을 토로한다. "티베트에서 보고자 했던 것은 그처럼 식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또 다른 형식의 불길로 빛나는 하나의 인간을 그곳에서 보고 싶었던 것인데…." 가파르고 메마른 풍경을 선명하고 강렬하게, 더러는 꿈 속의 일처럼 몽환적으로 그리며 그가 걸어 들어갔던 티베트의 색채를 전한다. 작가정신ㆍ372쪽ㆍ1만6,000원.
유상호기자 shy@hk.co.kr
■ 원흉부터 근대화 공로까지…불편한 진실
이토 히로부미 / 이종각 지음
안중근 의사에 의해 암살된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인에게 식민지배의 원흉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서구식 입헌주의와 인연이 없던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적 헌법을 제정하는 등 일본에서는 근대화의 공로자로 높게 평가된다.
언론인 출신인 이 책 저자는 벽촌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가 하급무사로 신분상승을 하고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4차례 총리대신을 지냈으며, 초대 한국통감을 지낸 이토의 풍운아적 면모를 조명한다. 그의 공과 과를 균형있게 따루고 있는 것이 특징. 고종이 이토 사망후 그를 '자비로운 아버지'라며 비탄했던 사실, 안중근 의사의 아들이 1930년대말 이토의 아들에게 사죄한 사실 등 우리 입장에서 믿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도 소개하고 있다. 동아일보사ㆍ392쪽ㆍ1만3,000원.
이왕구기자 fab4@hk.co.kr
■ 가장 낮은 곳에서 그린 현대사의 굴절
나는 공산주의자다 / 허영철 원작ㆍ박건웅 만화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90)의 수기 를 만화로 그렸다. 목판 기법을 모방한 투박하고 선 굵은 그림이 인상적이다. 한 개인이 가장 낮은 곳에서 온몸으로 겪어낸 한국 현대사 이야기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인 그는 일제시대 탄광 노동자로 일하다 사회주의자가 됐다. 한국전쟁 중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북으로 후퇴, 1954년 공작원으로 남파됐으며 이듬해 체포돼 투옥 36년 만인 1991년 출감했다.
영웅담도 거친 투쟁기도 아니다. 살아온 세월을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풀어갈 뿐이다. 그 차분함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한국 현대사의 굴절과 상처, 양심의 자유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보리ㆍ전2권ㆍ1권 284쪽 1만1,000원ㆍ2권 348쪽 1만2,000원.
오미환 기자
■ 문화재 약탈 막은 조선의 대부호 일대기
간송 전형필 / 이충렬 지음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는 서화, 도자기, 불상, 서적 등을 수집해 선조들의 혼과 얼이 담겨있는 우리 문화재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일대기를 재구성했다. 약간의 상상력이 가미됐지만 사실에 충실하고 간송 집안의 감수를 거친 점이 돋보인다.
간송이 3ㆍ1운동 민족대표로 당대 최고의 고서화 감식가였던 오세창에게서 서화와 전적을 감식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 기와집 400채 값을 치르고 일본에서 명품 고려청자 20점을 한꺼번에 사들이는 등 국보 12건과 보물 10건을 비롯해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명품 문화재들을 수집해나가는 과정을 중요 수집품을 중심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조선의 40대 부자로 꼽혔을 정도의 막대한 재산을 문화재 수집에 쏟아붓는 정성과 열의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김영사ㆍ408쪽ㆍ1만8,000원.
남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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