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격(國格) 논의가 활발하다. 그 가운데 외국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면 국격을 높일 수 있다는 데 공감하는 이가 많다. 이를 위해서는 외국의 한국학 연구를 더 지원해야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외국에서 한국을 공부하는 학자와 학생이 늘어나면 한국을 잘 이해하는 친한파 또는 최소한 지한파(知韓派)가 많아질 것이고, 국격과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주장이나 논리는 아니다. 1980년대 말부터 서울 올림픽과 민주화, 경제 성장, 해외 유학 붐 등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한국은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는 아직 지명도나 외국인들의 이해 정도가 낮다. 특히 외환 위기와 IMF 관리체제를 겪으면서 개방된 경제 환경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친한파'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국학 지원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한국학이 무엇인지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한국학은 말 그대로 '한국에 관한 학문'이다. 한 국가 또는 지역을 다루는 학문은 '지역학'이라고 한다. 지역학은 1930년대 미국에서 시작돼 2차 대전 이후에 성장한 분야이다. 그만큼 지역학은 역사와 전통이 깊은 기초학문 분야가 아니다.
게다가 한국학을 연구하는 교수와 공부하는 학생은 대부분 다른 오래된 학문 분야를 전공하고 그 학과에 속해 있다. 따라서 한국학을 지원한다는 것이 사실 애매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학 연구자의 전공이 인문학인지 사회과학인지, 또 기초 연구인지 실용 연구인지를 구분하기가 모호하다.
외국의 한국학은 대개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특히 그렇다. 두 나라 한국학계는 진보적 성향이 강하고 과거 한국의 독재 정권에 비판적이어서 지금도 한국에서 지원을 받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다. 한국 대학에서의 학술 활동의 객관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한국은 이미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국가이다. 그런데도 굳이 국내가 아닌 외국의 한국학을 지원할 필요가 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수한 외국 학생을 초청해 한국에 살면서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지속성이 클 수 있다. 1948 년 설립된 미국의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이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외국인 유학생들을 지원, 세계 각국에 지미파(知美派)를 만들고 국익에 기여한 사실을 참고할 만하다.
학문적으로 지역학의 위상은 높지 않다. 그러나 갈수록 국제적 비중이 높아지는 한국의 언어, 문화, 그리고 사회 등을 중심으로 대학 교양과정에서 다루는 것은 어느 나라든 의미가 있다. 또 그것이 한국의 입장에서 한국을 널리 알리고 이해를 높이는 데도 도움될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외국 몇몇 명문대학의 전문 한국학 연구센터를 지원하는 것보다 언어 교육을 비롯한 기초학문 분야의 한국학 전문가를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국내에서든 외국에서든 한국학 지원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흥미 있는 수업을 통해서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지적 소유'가 늘면, 여러 나라가 자체적으로 한국학을 지원하는 비중이 많아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학 연구와 교육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갖춘 한국에서 굳이 외국인을 가르치지 않고 전문가 육성에 초점을 둘 수 있겠다.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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