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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老後는 없다

입력
2010.05.0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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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후 줄곧 아파트 생활만 하다가 단독주택으로 옮겨오니, 일주일에 세 번씩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 생활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해 각각 다른 봉투에 담아서 정문 앞에 내놓아야 한다. 수거 시간도 정해져 있다. 그 시간을 놓치면 각종 쓰레기를 2~3일간 집안에 더 모셔둬야 한다.

하지만 재활용 쓰레기는 굳이 시간을 지킬 필요가 없다. 환경미화원들이 아닌 동네 노인들 몫이기 때문이다. 4년 전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재활용 쓰레기를 가져가는 노인이 많지는 않았다. 폐지 뭉치나 빈 병이 종일 정문 앞에 그대로 놓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내놓기가 무섭게 사라진다. 손수레를 끌고 와 종이 박스와 신문지 등을 담아가는 할머니, 전동 휠체어에 의지한 채 빈 병 따위를 수거하는 할아버지도 계시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으나 동네를 누비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만은 분명하다.

늘어나는 가난한 노인들

이들이 힘겹게 모은 폐지 등을 팔아서 손에 쥐는 돈은 고작 하루에 5,000원 수준. 한 달간 쉬지 않고 일해도 20만원이 채 안 되는 액수다. 가난한 노인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가구의 절대 빈곤율은 35.9%(2008년)에 달한다. 10가구 중 4가구 정도는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적은 빈곤층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나라에서 돌봐줘야겠지만, 노인복지는 정책의 우선 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려나 있다. 부양해줄 자식이 없어 정부의 지원을 받는 노인가구는 10% 남짓이고, 나머지는 자식들이 생활고로 연락을 끊은 경우가 적지 않은데도 법적인 부양 자식이 있어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

노인들의 소득 구성을 보면 빈곤의 원인을 알 수 있다. 퇴직급여 등 공적 이전 소득이 전체 소득의 14%에 불과하다. 평균적으로 한국 남성은 만 55세, 여성은 만 52세에 은퇴하는데, 정년 이후 지급되는 연금 규모가 충분하지 못하니 일을 해서 보충할 수밖에 없다. 한국 남성의 실질 은퇴연령이 71.2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긴 이유이기도 하다. 생존하려면 70세가 넘도록 노동시장에 남아서 버텨야 하는 것이다.

평균 55세에 은퇴한 한국 남성의 72.3%는 주로 경제적 이유 때문에 재취업을 희망한다. 노인들은 근력 등이 청ㆍ장년층보다 열세인 반면, 종합적인 판단력과 경험, 노하우 등에서는 앞선다. 따라서 화이트칼라나 숙련 기술 분야가 노인노동에 적합하다. 하지만 마땅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높은 실업률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일자리의 우선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그나마 아파트 경비원이나 빌딩 관리원 같은 인기직종은 경쟁이 치열하다. 결국 지하철 택배, 폐지 줍기 같이 오로지 몸을 쓰는 노동에 내몰린다.

가난한 노인들에게 찾아오는 병마는 치명적이다. 한국인 1인당 평생 지출하는 의료비는 평균 7,800만원인데, 그 중 4,300만원이 60세 이후에 들어간다. 질병과 외로움, 경제적 무력감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이다. 2008년 60세 이상 노인 자살자 수는 4,365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였다.

노인복지는 여전히 뒷전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노인의 나라'가 된다. 2050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34.4%, 80세 이상이 12.6%에 달할 전망이다. 불과 10년 전 80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였으니, 고령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짐작할 수 있다. 부양 대상자는 급격히 늘고 있으나 출산율 저하로 연금은 고갈돼 가고, 정년퇴직 시기는 갈수록 단축되고 있다. 60세 무렵에 퇴직해 꼬박꼬박 나오는 연금으로 취미생활을 즐기는 노후는 이제 기대하기 어렵다.

어버이날에 돌아본 우리 어버이들의 자화상이자, 우리들의 미래이다.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노인들을 나 몰라라 하면서 국격(國格)을 논의하는 것은 몰염치한 짓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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