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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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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처럼

입력
2010.05.0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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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제주(祭主)였다. 할아버지가 본으로 써주신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를 어린 손으로 베껴야 했다. 그 할아버지, 내 이십대 때 아버지 파제사 다음날 돌아가셨다. 아버지 제사에 가족 친척이 모였고, 다음날 제꾼들이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 운명하셨다.

그래서 우리집은 아버지, 할아버지 제사가 한날이 되었다. 할아버지 투병 중에 아들이 데리러 오면 떠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씀대로 되셨다. 그때부터는 懸祖考學生府君神位(현조고학생부군신위)도 내가 썼다. 음력 삼월 스무사흘. 두 분을 함께 모시는 제삿날이다.

한때 내 사는 일이 힘들었을 때 할머니 제사도 같이 모셨다. 제주가 되어 보면 안다. 제꾼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그 사이 '빙장 어른'의 단골제꾼이었던 세 분의 고모부가 돌아가셨기에 더욱 그랬다. 어떤 때는 여동생 부부만 참석하는 쓸쓸한 제사를 지내기도 했는데 올 제사는 참 많이 모였다.

고모 네 분은 하루 전날부터 오셨다. 어머니 방에서 불빛 속에 올케 시누이들 간에 도란거리는 소리가 밤새 들려나왔다. 서울, 진해, 부산, 양산에 흩어져 사는 고모들의 참석으로 고모부, 고종사촌들까지 모여 오랜만에 북적북적하는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내고 오랫동안 우리집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박재삼 시인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처럼.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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