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2000년 이후 다섯 번째다. 민감한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기보다는 중국 지도부의 초청에 따라 3월 말에 이미 예정돼 있었으나 민감한 시기를 피해 5월 초로 미뤄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북한과 중국 입장에서는 지금 시점이 김 위원장 방중의 가장 적절한 시기로 판단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 배경을 놓고 수많은 분석이 있지만 무엇보다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2012년까지 경제 강국을 건설하여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완성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국가개발은행을 만들어 100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해서 각종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나선시를 특별시로 지정하고 나진항을 중심으로 개발하려는 의욕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외자유치는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와는 무관하다는 입장도 분명히 한다. 중국이나 유럽의 투자를 기대하는 듯하다. 김 위원장의 방중 첫 목적지가 동북3성의 대표적인 임항 개발지인 다롄이었던 점은 이를 대변한다. 북한은 6자회담에 약간의 관심을 보이면서 중국으로부터 투자유치와 관련된 모종의 긍정적 답을 이끌어 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북한이 기대하는 것만큼 나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일단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중국을 공개적으로 방문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의 투자위험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위험도가 높은 것은 중국자본에도 예외일 수 없다. 더욱이 중국자본 역시 글로벌화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세계에서 위험성이 가장 높은 곳에 투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일정 정도의 대북투자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자국 기업들에게 강압적으로 북한에 투자할 것을 요구할 리도 만무하다.
물론 김 위원장의 방중에 따른 일정한 정도의 선물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기대치에는 못 미칠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 중국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재확인했다는 등 말의 성찬은 풍요로울지 모르지만 경제적 성과는 속 빈 강정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네 차례 김 위원장 방중 이후에도 역시 이렇다 할 중국의 투자는 없었다. 중국의 경제력이 커진 만큼 중국의 판단 역시 글로벌화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압박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중국을 일종의 출구로 생각할 것이다. 말로는 중국이 없어도 얼마든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고 큰 소리 치지만, 점점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중국 역시 국제적 위상을 감안해서라도 무한정 북한의 편을 들 수만은 없다. 북한을 배려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 역시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네 차례의 방문 이후 북한은 과연 무엇이 변했는가? 중국 선전과 상하이를 방문하고 나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나왔지만 북한은 변한 것이 없다. 국제사회와 핵과 미사일을 놓고 각을 세우는가 하면 금강산 투자 자본을 몰수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라와 있기까지 하다. 외자유치와는 역행하는 투자환경을 조성해 놓고 중국자본의 투자를 원하는 모순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미 세상은 다 아는 사실인데 중국과 북한은 예년과 같이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내내 언급하지 않고 있다가 끝나고 나서야 회담 결과만 간략하게 발표했다. 현대판 고전 희극을 보는 듯하다. 결국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떳떳하게 중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한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점점 더 외화내빈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것이 중국의 입장에서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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