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미국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1층 강의실에 둘러 앉은 20여명의 학생들은 노교수와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이날 수업은 사회적 기업 전문가로 꼽히는 릭 오브리 교수가 담당하는 사회적 기업가 과정이다.
오브리 교수는 '빵을 팔려고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위해 빵을 판다'는 모토로 유명한 사회적 기업 루비콘의 창업자다. 그는 1986년부터 지난해까지 루비콘 대표를 맡아 제빵, 조경 사업 등을 통해 미국의 장애인과 빈곤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연 1,600만 달러가 넘는 수익까지 올렸다. 이 같은 성공은 세계적 명문인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에 사회적 기업가 과정을 탄생시켰고, 지난해 말부터 그가 직접 강의를 시작했다.
오브리 스탠포드대 교수 "사회적 기업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가져온다"
이날 강의는 독특한 외부 초청 강사가 참여했다. 또다른 사회적 기업 킥스타트의 대표 마틴 피셔 박사다. 오브리 교수의 소개를 받은 그는 희한한 펌프를 강의실 한 복판으로 끌고 왔다.
피셔 박사는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는 펌프를 닮은 기기를 가리키며 "케냐의 민주주의를 가져온 펌프"라고 소개했다. 케냐는 비가 적게 내려 농사에 어려움을 겪던 중 기증자들이 전달한 펌프로 밭에 물을 뿌려 수확량을 끌어 올렸다.
여기 주목한 킥스타트는 아예 본격적인 펌프 생산에 나섰다. 킥스타트는 더 넓은 밭에 물을 뿌릴 수 있도록 펌프를 개량했고, 중국에서 대량 생산해 아프리카에서 만들 때보다 싸고 질좋은 펌프를 케냐에 공급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킥스타트가 개당 68달러에 생산한 펌프는 판매점에서 98달러에 팔렸다.
여기서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가난한 케냐 농민들이 무슨 수로 펌프를 살 돈을 마련하며, 우물에서 펌프까지 물을 전달할 호스 등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학생들의 질문 요지는 차라리 공짜로 나눠주는 게 더 좋지 않냐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적 기업의 존재 가치와 직결되는 중요한 질문들이다.
피셔 박사나 오브리 교수의 답은 간단했다. 펌프 기증 등 직접적 지원은 일부분의 사람들에게 1회성 도움만 줄 수 있지만 기업이 수익을 목표로 품질을 개량해 적정 가격에 펌프를 공급하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킥스타트는 케냐 뿐 아니라 탄자니아, 말리 등에 350개 판매점을 통해 펌프를 판매했다. 돈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휴대폰으로 돈을 빌릴 수 있는 방법도 개발했다. 피셔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 향상은 더 많은 중산층을 양산하며, 이는 곧 국가 경제의 성장과 더 나은 복지 제도의 확대, 더 나은 민주정치를 실현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복지의 확대를 위해 이윤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오브리 교수 및 피셔 박사의 강의 요지였다. 이날 모인 학생들은 기업 활동에 대한 또다른 시각을 갖게 된 듯 두 노교수의 강의에 열띤 박수로 화답했다.
강의가 끝난 뒤 만난 오브리 교수는 "루비콘의 상징이었던 제빵 사업에서 손을 떼고 지난해에서민들을 위한 대출 사업을 시작했다"고 근황을 소개했다. 그는 "연간 수백 %의 고금리로 돈을 빌리는 신용 불량자들에게 18%의 저리로 돈을 빌려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두 번 다녀간 그는 한국의 예비 사회적 기업들을 위해 "사전 조사를 통해 이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어떻게 이익을 낼 수 있을 지 연구한 다음 사업을 시작하라"며 "이를 위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만큼 품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에스더 REDF 이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활동이 중요"
6일 샌프란시스코시 하워드가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지원 및 자문업체인 로버츠기업개발기금(REDF) 사무실에서 만난 김 에스더(한국명 김은규) 포트폴리오 담당이사도 같은 지론을 폈다. 그는 "사회적 기업도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시장 경쟁에서 이길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성과 달성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REDF는 조지 로버츠가 1985년에 설립해 사회적 기업을 자문해주고 육성하는 일을 한다. 단순 육성이 아니라 자본 투자를 통해 해당 기업이 성장하면 이윤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주마 벤처스, 버클루 등 널리 알려진 사회적 기업들에 투자했다.
5세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김 이사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환경공학 석사를 마치고 맥킨지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던 중, 개인의 영리보다 사회적 이익을 위해 일하고 싶어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10년 전 REDF에 합류했다.
전문가들이 모여든 REDF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투자를 과학적 방법으로 평가한다. REDF는 사회적 기업의 활동으로 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향상 됐는 지를 평가하는 사회적 이윤추구(SROI) 계산법 대신 'ETO 2.0'이라는 시스템을 새로 개발해 투자 평가에 적용하고 있다. 김 이사는 "SROI는 계산이 복잡하고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며 "ETO는 기업별로 수집한 자료를 수치화해 비교 평가할 수 있어 과학적 투자 분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요즘 REDF는 사회적 기업을 평가할 때 사회적 약자들에게 단순 용역이 아닌 얼마나 더 나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지를 따져 본다. 김 이사는 "사회적 기업들에게 목표치를 정해 놓고 재무, 사회적 기여도, 운영 여부 등 결과에 따라 투자한다"며 "사회적 기업의 중요성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그만큼 사회적 기업가들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샌프란시스코=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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