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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테마기획 - 잡맛 없고 깔끔한 '한국산 커피'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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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테마기획 - 잡맛 없고 깔끔한 '한국산 커피' 탄생

입력
2010.05.0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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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령 기슭서 자란 커피나무, 열매를 볶아 마셔보니…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커피를 마시기 전까지 나는 절대로 웃지 않는다.' '커피는 우리를 진지하고 엄숙하고 철학적으로 만든다.'

커피에 대한 찬사가 이렇게 많은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따뜻하고 향기 그윽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으면 누구나 마음이 포근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유명 모델들이 커피 광고를 선호하는 것 또한 커피에 붙은 그런 이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커피는 아무 곳에서나 나지 않는다. 북위 25도에서 남위 25도까지, 대략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의 무덥고 다습한 아열대지역이 커피의 주산지다. 커피가 잘 자라는 그곳을 커피벨트 혹은 커피존이라고 부르는데 커피벨트든, 커피존이든 그저 부르기 좋으라고 만든 단순한 용어가 아니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자연의 규칙 혹은 자연의 법칙이다.

자연적으로는 이 보다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커피나무가 클 수 없다. 북회귀선보다 훨씬 위도가 높은 한국에서 커피나무를 재배하려면 비닐하우스나 온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비닐하우스든, 아니든 한국에서 커피나무가 자라는 것 그 자체가 특이한 일이다. 식물로서 생김새가 그리 빼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관상용으로 커피나무를 키우는 것도 바로 그 특이함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의 커피농장에서 커피 열매를 수확하고 볶아 진한 향의 커피를 만들었다. 커피 전문점, 커피박물관 등을 함께 갖춘 이 농장에서 수확한 커피 열매의 양은 40㎏. 에스프레소를 기준으로 하면 2,000~3,000잔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수확한 열매의 껍질을 벗기고 기계에 볶고 갈아 커피를 만든 뒤 시음회까지 열었다. 커피는 아라비카버본종으로 잡맛이 없고 깔끔해 시음을 한 전문가들로부터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다. 농장 대표 김준영(44)씨는 "열매를 따고 볶아서 커피로 마신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적은 양이기는 하나 한국산 커피가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수확한 열매는 시음회 등에서 대부분 소화하고 일부는 경매 판매용으로 남겨 두었다.

농장은 눈 많고 바람 거센 대관령 기슭에 있다. 한국에서도 유난히 기후가 혹독한 곳인 만큼 커피나무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데 어린 묘목에서 25년생까지 모두 1만 그루에 이른다. 그렇다고 여느 열대식물처럼 키가 크거나 가지가 많은 것은 아니다. 어린 나무는 깻잎, 상추처럼 보이는데 촘촘하게 심어도 무방하다. 25년생이라고 해도 가지치기 등을 해서 키가 2.5m 정도이고 둘레도 가는 편이니 그리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농장에서 커피나무를 재배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강릉 안목항 부근에서 커피점을 운영하던 김준영씨가 제주도 여미지식물원과 지인들로부터 나무와 씨앗을 얻어와 취미로 재배를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커피나무 키우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어려워 손을 대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온도와 습도를 잘 맞추고 냉해를 조심하면 그럭저럭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온도는 1년 내내 15~25도, 습도는 60%를 맞춰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 비닐하우스에는 온풍기 등을 들여놓았다. 춥고 눈 많은 지역인지라 겨울이면 직원들이 폭설 등에 대비해 비상근무에 들어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지난해 초에는 환기를 위해 열어둔 비닐하우스 문으로 찬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와 1,000여 그루가 냉해를 입어 얼어 죽었다.

그래도 이번에 예상보다 많은 커피를 수확했다. 농장 측은 내년에는 올해보다 2배 정도 더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커피나무는 4년생에서 15년생 사이가 가장 왕성하게 열매를 맺는데 현재 어린 나무가 많아 수확량이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온실을 추가로 건설하고 나무도 더 많이 심을 예정인데 커피는 씨앗을 발아해 키우면 되기 때문에 개체 확보가 어렵지는 않다.

길게는 독자 브랜드화도 추진할 계획인데 사실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커피벨트에서처럼 대량생산을 할 수 없는데다 온도, 습도를 맞추기 위해 비닐하우스나 온실을 짓고 온풍기 등을 돌리자면 비용이 많이 들어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판로 확보 역시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커피 수확 소식이 알려진 뒤 주민들이 커피나무 재배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어쩌면 나중에는 정말로 대관령 기슭 일대가 제법 많은 양의 커피를 생산하는 커피 산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 '커피도시' 강릉서 한잔의 추억 남겨볼까…

오죽헌, 경포대, 선교장, 단오제, 신사임당, 허난설헌….

우리가 아는 강릉은 역사, 문화, 관광의 도시다. 바다를 끼고 있기 때문에 먹을거리라면 활어회를 비롯한 해산물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강릉이 언제부턴가 커피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그윽한 향의 커피전문점이 즐비하고 서울, 부산 등 타지방에서 방문한 사람들은 그 커피를 맛보기 위해 일부러 커피전문점을 찾아간다. 한 커피점 관계자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이름이 한번 알려지자 손님이 와도 너무 많이 온다"며 "한국 사람들이 커피를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10, 11월에는 경포대, 사천항 등에서 커피축제를 처음으로 열었는데 반응이 좋아 올해 10월에 또다시 축제를 열 계획이다. 경기 양평에서도 5월에 커피축제가 열릴 것이라고 하니 강릉 커피축제를 계기로 전국으로 커피축제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강릉시에 따르면 지역에서 영업중인 커피전문점은 120여곳에 이르는데 안목항, 사천항 등 전망 좋은 곳에 하나씩 있던 커피점이 이제는 시 전역으로 확대돼 지역경제와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커피점 가운데 생두를 볶아 직접 커피를 만드는 로스터리숍이 30여곳에 이르는데 이 정도 규모의 도시에 이렇게까지 로스터리숍이 많은 것은 매우 드물다. 이들 로스터리 숍은 브라질 등 각국에서 생두를 수입해 볶은 뒤 그윽한 향의 커피를 만드는데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명소가 됐다.

커피나무에 열린 빨간 색깔의 열매를 흔히 커피체리라고 부른다. 체리는 그 안에 2개의 씨앗이 들어있는데 그 씨앗의 껍질을 벗긴 것을 생두라고 한다. 생두를 로스터기에 넣어 볶으면 까만 색의 원두로 변하는데 커피 특유의 고소한 향은 바로 이 과정에서 생긴다.

강릉에서 이처럼 커피전문점이 성행하고 커피가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연곡동에서 커피전문점 '보헤미안'을 운영하는 박이추씨는 강릉에 현재 일곱 군데의 커피전문아카데미가 개설돼 있는데 그것들이 전반적으로 커피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도시 가운데 커피아카데미가 이렇게 많은 곳은 드물다. 그는 이와 함께 강릉이 문화도시이자 바다와 산이 있는 자연도시라는 점을 거론하며 그런 지역적 특성이 아무래도 커피에 붙은 문화적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러나 또 다른 커피전문점 테라로사의 한 관계자는 "강릉 사람은 모임을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자주 만나기 위해 향기 좋은 커피가 있는 곳을 자연스럽게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릉에 커피명인이 많다거나 커피점 주인들이 적지 않은 사연을 안고 있다는 식의 이야깃거리도 어쨌든 강릉 커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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