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유럽연합(EU) 및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에 대한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합의하면서, 그리스 위기는 일단 '급한 불'은 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번 주 금융시장은 오히려 위기가 더 확산될 것처럼 반응했다. EU가 그리스에 요구한 조건이 너무 가혹해, 실제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았기 때문이다.
EU와 IMF의 합의안에 따르면 앞으로 2012년까지 3년 동안 그리스는 1,100억유로의 유동성 지원을 받아 그때까지 만기 도래할 800억유로의 국채를 상환하고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보전하게 된다. 대신 그리스는 3년간 300억유로의 고강도 재정긴축에 나서, 지난해 13.6%에 달했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014년에는 3% 미만으로 낮춰야만 한다.
하지만 이같은 조건은 너무나 가혹하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평가. 그리스는 올해와 내년 각각 -4%, -2.6%의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EU와 IMF조건을 맞출 경우 성장률이 -9%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유로 단일통화 특성상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한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그리스 국민들은 연금 및 소득이 대폭 깎이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이미 재정긴축 반대 시위에서 3명이 숨지는 사건까지 일어난 마당에, 과연 그리스가 이처럼 가혹한 조건의 구제금융 방안을 실제로 실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시장에서 회의가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그리스가 무질서하게 붕괴된다면 유럽 금융기관이 막대한 손해를 입을 것이고 다른 국가로 전염되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며 "유럽 채권국들이 상환금액 삭감이나 만기연장 같은 채무 재조정을 통해 그리스 정부의 채무상환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가 채무불이행이나 유로존 탈퇴를 선언하지 않고 채무상환이 가능하도록 해야지,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다그치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IMF나 EU쪽 요구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디폴트를 선언하는 게 낫다"는 얘기가 그리스 내부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최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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