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은 120주년 노동절이었다. 1886년 미국에서 벌어진 파업 시위의 뜻을 기리기 위해 1890년부터 시작된 노동절이지만, 올해는 국제적 맥락보다 국내의 사건이 더 중요한 노동절이었다. 올해도 여러 가지 집회와 행사가 열린 가운데 특별한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발표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의 노조전임자 유급 활동시간 결정을 둘러싸고 1주일 동안 당사자간 갈등이 봇물처럼 표출되고 있다.
노조 전임자 문제의 진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위원회 결정대로라면 노조 전임자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국 노조를 위축시키자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는 노동계의 반발이다. 노조를 너무 압박하면 그 반발력이 클 수밖에 없다는 논평까지 등장한다.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이 그랬다.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를 보면 여주인공이 우연히 나타난 첫사랑의 열정 앞에서 애써 지켜오던 인생의 냉정함이 무너져 내린다. 마찬가지로 13년 세월 공방을 벌였지만 냉정을 잃지 않고 관철해 낸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라는 사회적 합의도, 노사공익 대표가 모인 위원회에서 실태조사를 통해 담백하게 접근했던 전임자 운영의 실체적 진실도 이 순간 탄압과 투쟁의 뜨거운 구호 속에서 너무 간단히 용해되는 듯하다.
120년 전 노동절 제정의 배경도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외침이었고 20여 년 전 우리의 노동자 대투쟁도 그랬다. 그러나 지난 20 여 년, 적어도 대기업 노조는 인간다운 생활을 쟁취했다. 대기업과 고임금 업종의 노조 전임자에 대해 유급 인정 한도가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산정되었다는 이번 결과를 노조 중심세력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라고 해석하기보다는 고임금 다수 조합원을 가진 노조는 필요하다면 스스로 재원을 마련해서 추가 전임자를 두자는 취지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설명에 뒤따르는 질문은 이렇다. 어느 대기업 조합원들이 조합비를 올려서 전임자를 더 늘려주겠는가, 따라서 결과적으로 전임자는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솔직한 진단이라고 본다. 그래도 쉽지는 않겠지만
조합원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낀다면 조합비를 기꺼이 올릴 것이다. 당연히 사용자들은 노조가 조합비를 올리고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열정적으로 전임자를 늘릴 정도의 위기감을 종업원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 평상시 노사간 신뢰와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유급 전임자 활동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가를 둘러싼 다툼 말고, 사실 이번 노동절에 나온 또 다른 뉴스가 더욱 열의를 가지고 풀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에 사상 최고인 20조원의 시중자금이 몰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돌아다니는 돈이 많고, 많은 사람이 일로 버는 임금소득보다 자본소득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잘사는 동네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옆집에 펀드나 주식계좌 하나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좋은 일자리 감소가 진짜 문제
생산적인데 투자는 일어나지 않아서 국민 일자리는 줄어들고, 일자리가 불안하니 자본소득에 동참하려는 동기는 강해지고, 이에 부응해 기업은 단기간에 이익을 내기 위해 소수의 금융이나 고급 연구인력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불균형의 확대 재생산을 고치지 않는 한 노사 공동체적 생존기반이 붕괴될 것이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예견한 '일자리의 종말'상황은 아니라도 좋은 일자리가 우리 주변에서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사업장에서 전임자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대신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이 이 문제로 뜨겁게 설전을 벌여야 한다. 정부나 재계는 노조의 상급단체 간부들이 열정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별도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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