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택 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빠른 증가세를 지속한 가계 대출은 주택가격 급등을 초래한 주된 요인 중 하나였다. 작년 말 734조 원을 기록한 가계부채는 집값 하락 전망에도 불구하고 계속 늘어나고 있어 경제의 회복세를 위협하는 복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가계부채 문제가 쉽게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달 비용을 증가시키면 가계부채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미 가계부채 규모가 매우 커진 상황에서는 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추가부담이 지나치게 늘어날 수 있다.
규제와 거래 침체의 악영향
이 경우 그나마 살아나고 있는 경기 회복세가 저해될 수 있어 정부는 정책 금리 인상에 부정적인 의견을 자꾸 피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반등세를 억누르기 위해 광범위한 DTI 규제를 도입한 바 있다.
이러한 가계부채 및 금리정책의 문제는 주택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주택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거래가 실종되었다고 할 정도로 매우 침체돼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DTI 규제가 신규대출에 적용되기 때문에 주택 매수세가 감소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더해 인구 구조의 변화 등에 따른 주택가격의 장기 하락 가능성도 자주 제기되고 있어 매수세의 위축은 당연하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물가 인상률을 감안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또는 제로에 가깝게 유지됨에 따라 투자 목적의 주택 보유자 입장에서는 매도 가격을 낮추지 않고 팔릴 때까지 기다리는 비용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집값이 하락하더라도 단기 반등하는 시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이들에겐 유리하다. 이에 따라 주택 매도자의 입장에서는 당장 호가를 낮추지 않고 장기가 되었든 단기가 되었든 주택 가격이 반등할 때까지 적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기다리게 된다.
주택 매수자와 매도자의 입장이 이처럼 다르기 때문에 주택시장의 호가 차이는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그 결과, 주택 가격에 큰 변화가 없는 가운데 주택 거래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것이다. 주택 가격의 급등과 급락 모두를 우려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오히려 반갑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주택 거래의 침체는 경제에 여러 가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주택 거래의 침체는 주택이라는 실물자산의 유동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주택 보유자의 유동성 제약을 악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집을 넓혀 이사하려고 새로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가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아 발목이 잡힌 사연은 이미 흔하게 들을 수 있다. 또 가계소비가 주택매매와 직접 연관되지는 않겠지만,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실물자산의 유동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경우 가계의 예비적 동기의 저축이 늘어나 소비가 위축될 수도 있다.
갑작스런 충격 오지 않도록
더 큰 문제는 유동성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외부 충격에 따라 자산시장이 급격한 변동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매도자와 매수자의 기대가 팽팽히 대치하고 있다가, 위안화 절상이든 CD 제외 예대율 규제이든 외부 충격에 따라 한 쪽으로 쏠릴 경우 그 충격은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지금부터라도 향후 금리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가계 대차대조표의 조정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완연한 경기회복을 기다리면서 외부 충격이 오지 않기를 바라기에는 우리 경제가 이미 충분히 복잡하고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