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을 향한 '하녀'의 야망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전도연이 '하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을 때 충무로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2008년 칸국제영화제 클래식부문에 상영됐던 동명 원작과 프랑스인들이 선호하는 임상수 감독의 만남, 그리고 '칸의 여왕' 전도연의 합류는 황금조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하녀'는 5월12일(현지시간) 개막할 제63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전도연은 '하녀'에서 맹한 듯 순수한 하녀 은이로 변해 그의 존재 가치를 또 다시 빛낸다. "저 이 짓 좋아해요"라며 세상의 궂은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이 세상 나한테 참 불친절해"라는 말과 함께 절제된 분노를 폭발시키는 연기는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감정의 널뛰기를 보여주지 않고도 은이의 심리 변화를 그는 정확히 전달해낸다.
2007년 '밀양'으로 칸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은 전도연은 3년 사이 사적으로, 공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한 남자의 아내와 한 아이의 엄마가 됐고, 세계적 배우로 발돋움했다. "2007년 당시엔 무관심의 대상이라 열등감도 느꼈고 자신을 더욱 포장해야겠다 생각했던" 그는 올해 칸에선 밀물같이 몰아닥칠 인터뷰를 치러내야 한다. 새삼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는 전도연을 5일 오후 서울 신문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가정이 있기에 "'하녀'의 노출 장면이 부담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결혼을 결심할 때는 생각지도 않은 문제였다"지만 "내 욕심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하녀' 시나리오를 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주변에 동의를 구할게 많더군요. 다행이 남편이 '결혼 전후가 다르지 않은 배우였으면 좋겠다'며 믿음을 던져주었습니다. 결혼 뒤 달라져야 한다 생각하진 않지만 이런 부담을 계속 안고 가야 하는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도연이 연기한 은이는 "인생에 대한 원망도 불만도 없는 괴물 같은 여자"다. 그는 "은이의 순수함을 잘 받아들이지 못해 처음엔 힘들었지만 나일 수도 있다 생각하니 편해진 캐릭터"라고 했다. "배우로서 뭔가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지 않고 그저 주어진 상황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면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더라고요. '밀양' 찍을 때 이창동 감독에게 배운 점이죠. 참 감사한 분입니다."
전도연은 "2007년 칸에서 나에게 상을 준 사람이 알랭 들롱인 줄 몰랐을 정도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국제영화제 참가는 처음이었고, 그렇게 대단한 상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고도 말했다. 그러기에 "이번엔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칸에 갈 수 있을 듯하다"며 특유의 코맹맹이 웃음을 터트렸다.
칸이 사랑하는 여인이 됐지만 그는 "연기생활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예전처럼 배역에 열과 성을 다하는데 단지 그것을 달리 받아들이는 듯하다"고 했다. 그는 '열과 성'을 "촬영할 때 항상 감독에게 100% 맡기고, 나의 120%를 다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무엇이든 납득만 되면 토 달지 않고 연기하는 스타일"이라고도 했다.
그는 "여배우가 출연할 수 있는 영화가 너무 없는 요즘 '하녀'는 가뭄의 단비 같은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농밀한 성적 묘사와 무거운 주제 때문인지 "주변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이 있었다"고 했다. "전 쉽게 편안히 연기하는 것에 만족을 못해요. 끊임없이 도전하고 안주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는 듯해요. '하녀'는 많이 웃으면서 촬영했는데 완성된 뒤 보니 마냥 웃으며 볼 영화는 아니더군요. 제목만 보면 제가 원맨쇼 하는 영화 같지만 윤여정 이정재 서우씨 등 배우들이 고루고루 조화를 이룬 작품입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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