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수현씨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배우들을 일컬어 '김수현 사단'이라고 부른다. 사극의 대가인 이병훈 PD 역시 그가 연출한 드라마에 같은 배우들을 자주 출연시킨다. 하지만 이들 '사단'이 운용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김씨는 같은 연기자를 다시 중용하더라도 다른 느낌의 캐릭터를 입혀 변화를 주는 반면, 이 PD는 같은 연기자에게 비슷한 캐릭터를 맡겨 익숙함을 추구한다. 두 대가의 용인술이 서로 다른 셈이다.
음악에 변주를 주듯 늘 새로운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김수현 드라마답게, 그가 주로 쓰는 가족드라마에는 다른 느낌의 같은 배우가 등장한다.
1991년 방송했던 '사랑이 뭐길래'에서 가부장제의 대가족 안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한탄하는 어머니를 연기한 김혜자는 2008년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같은 형태의 가족이지만 자신의 인생을 찾아 과감하게 가출을 감행하는 며느리로 분한다. '사랑이 뭐길래'와 '엄마가 뿔났다'에 함께 출연한 이순재 역시 집안의 어르신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는 할아버지로 모습을 바꾼다. 김희애는 '완전한 사랑'에서 재벌가 시댁의 모욕을 감수하는 며느리를 연기했지만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친구의 남편과 불륜에 빠지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SBS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장미희, 김상중, 김해숙 등의 '김수현 사단' 배우들이 등장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섭 CP는 "김씨는 워낙 연기에 신경을 많이 쓰고 배우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캐릭터 구축이나 작품 해석에서 통하는 배우들과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면서 "일상에 바탕을 둔 가족드라마기 때문에 캐릭터가 확 바뀌기가 쉽지는 않지만, 김 작가는 정형화된 이야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새로운 소재와 캐릭터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MBC 드라마 '동이'를 연출하고 있는 이 PD는 외길 장인을 연상케 한다. 사극이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작품과 작품 속 캐릭터는 기본적인 골격이 같은 '그 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중견 대신 역할에 조경환과 신국, 극에 재미를 불어넣는 감초 연기를 소화하는 임현식과 이희도, 상궁과 나인 등으로는 김소이, 이숙 등이 이병훈 드라마의 단골 손님들이다. 이들은 매 작품마다 연기하는 캐릭터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배우의 이미지에 맞는 역할로 한 우물을 파는 셈이다.
장근수 CP는 "이 PD가 오랫동안 사극을 연출하다 보니까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배우들과 여러 작품을 한 것 같다"며 "이번에는 정동환, 이계인, 이광수, 임성민 등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출연해 새롭게 해보자는 결단이 있었는지 생각될 정도"라고 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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