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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50년전 원작 해체… 성적묘사 농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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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50년전 원작 해체… 성적묘사 농밀

입력
2010.05.0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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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거리는 도심 먹자골목에서 한 여인이 투신한다. 사람들은 잠깐 시선을 돌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입에 올리지만 이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비정하기만 한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한 모습을 포착하며, 비극적 결말을 예감케 하며 영화 '하녀'는 출발한다.

한국영화의 전설로 남은 고 김기영(1922~1998) 감독의 1960년 동명 원작을 새로 만든 '하녀'는 원판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원작을 전면해체하고 새로운 자재를 추가해 축조한 2010년판 '하녀'에서 50년 전 '하녀'는 무늬로만 남아있다. 이층집 구조와 피아노 치는 집주인의 모습 정도가 그 흔적을 가늠케 한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대중들의 호기심을 불렀던 침실 장면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마른 침이 삼켜질 정도로 야하다. 노출은 파격적이지 않으나 남녀의 동작과 대사가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다. 여러 사람이 보기 참 민망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임상수. '바람난 가족'과 '그 때 그 사람들'을 통해 익히 '이죽거림의 미학'을 선보였던 이 아닌가. 원작이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지렛대로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들춰냈다면, 새 '하녀'는 21세기 이 땅의 천민자본주의에 독설과 조소를 노골적으로 날린다. 성애의 열기는 스크린이 내뿜는 냉기에 덮여버린다. 차디찬 냉소로 가득한 영화다.

성냥갑과도 같은 고시원 방에서 생활하던 이혼녀 은이(전도연)가 엄청난 부잣집의 하녀로 들어가며 극은 탄력을 받는다. 고참 하녀 조병식(윤여정)과 은이 둘이서 하루 종일 청소만 해도 벅차 보일 만큼 저택은 으리으리하다.

젊고 잘 생기고 건장한 집주인 훈(이정재)은 "조 여사님 레드 와인 좀 주세요"라는 말로 좋은 첫 인상을 형성한다. 은이에게는 "애들 키워주시고 제 밥을 해주실 분인데"(은이와 훈의 관계가 유사 부부의 단계로 발전할 것임을 암시하는 대사이기도 하다)라며 친절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후 병식이 입에 달고 사는 '아ㆍ더ㆍ매ㆍ치'(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한)한 상황들이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돈을 매개로 한 더러운 욕망들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훈은 와인을 들고 은이의 방을 찾아 은이를 유혹해 관계를 맺은 뒤에도 짐짓 모른 척한다. 그저 거액의 수표를 건네며 "집어 넣으세요"라고 말한다. 훈의 장모(박지영)는 은이를 유산시키기 위한 시도가 무산되자 "아 참 질긴 것들이네"라고 짜증을 낸다. 남편의 불륜을 안 해라는 "내 빤쓰 빨던 X이"라며 분기탱천하지만 안락한 미래를 위해 화를 억누른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마당에도 훈은 "뭐 이런 재수 없는 경우가 다 있어"하는 듯한 냉랭한 눈빛을 날린다. "멍청한 것인지 순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은이만이 인간적일 뿐이다.

당하고만 살던 은이가 "찍소리를 내고 싶어" 선택한 행동은 우리 현대사의 참혹했던 여러 장면들을 연상케 한다. 없는 자의 가진 자에 대한 저항 방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영화는 말하려는 듯하다.

분명 수작이고 오락성을 갖췄지만 격한 감정의 파고를 일으키지 않는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가 금세 마를 영화다. 감독의 의도로 읽힌다.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13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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