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창 인기 있던 아이돌 가수는 나이가 들자 직접 프로듀싱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효리 같은 예는 드물다. 그는 자작곡을 쓰거나, 유명 뮤지션을 참여시켜 자신의 음악성을 인정 받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신진 작곡가들을 기용,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곡을 뽑아냈다.
발랄하게 웃으며 장신구를 착용하는 동작을 안무로 표현한 'U go girl'은 패션리더이자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친근한 이효리의 매력을 멋지게 풀어냈다. 이효리는 대중성을 포기한 음악적 변신 대신 자신에게 음악을 맞추면서 프로듀싱 능력을 증명했다. 이효리의 4집 'H.Logic'은 그런 점에서 문제작이다. 이 앨범은 이효리의 자의식과 주류 가요계가 원하는 트렌드가 기이하게 결합했다. 클럽에 어울릴 법한 힙합 사운드가 주를 이루는 앨범의 사운드는 아주 파격적이지는 않다.
강렬한 전자음의 파열로 시작하는 타이틀 곡 '치티치티뱅뱅'의 사운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곡은 시종일관 급박하게 멜로디를 몰고 가며 듣는 사람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뮤직비디오 역시 B급 SF영화, 별무늬가 새겨진 트레이닝복, 레이디가가를 연상시키는 패션 등 온갖 트렌드를 모아 극단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 트렌드 덩어리 밑에는 "어리버리 보면 다 비슷한데 어머 자세히 보니 아니네"('I'm back')라며 '이효리짝퉁'을 조롱하는 자의식이 깔린다. 이효리는 대중적인 요소들을 쌓고 쌓아 트렌드 세터인 자신의 위치는 물론, 음악적인 새로움까지 갖춘 자의식 있는 뮤지션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경쾌한 댄스음악 속에서 사생활을 캐는 기자를 욕하는 '스캔들'을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게 이효리다. 주류에서 자란 스타가 '파격적인 대중성'에 도전한 셈이다. 그러나, 이 도전에는 그만큼의 '엣지'가 없다. '치티치티 뱅뱅'은 각 부분마다 온갖 방법으로 듣는 사람을 몰아붙이지만, 귀를 환기시킬 새로운 사운드는 없다. 전체적인 전개도 기존 가요의 기승전결을 따르고, 무대 역시 강한 이미지의 컨셉트에 비해 춤은 평이하다. 여러 트렌드는 제시해도 트렌드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효리는 그렇게 늘 일정부분 아쉽지만, 결국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내며 "여기까지 혼자 왔"다.('치티치티뱅뱅') 그는 '치티치티뱅뱅'의 두 번째 무대에서 댄서들의 군무를 강조, 자기 춤의 단점을 가리는 영민함을 보였다. 이효리는 이번에도 결국 승리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 앨범쯤에는 그가 좋은 프로듀서라는 것을 흔쾌히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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