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다로운 연구동 출입 절차를 거친 뒤 로비에 들어섰더니 베스트셀링카인 '제네시스'의 뼈대가 전시돼 있다. 두께가 얇으면서도 안정성이 뛰어난 고장력 강판이 곳곳에 적용돼 있는데, 개발 시점과 양산 계획에 따라 어떤 부분은 흰색이고 어떤 부분은 금색 또는 회색이다.
# 1층에 있는 분석실에서 한 연구원이 1억배까지 확대 가능한 투과전자현미경(TEM)을 들여다보고 있다. "철강제품의 원자 배열을 확인하는 중"이라고 했다. 옆 분석실에 있는 집속전자빔(FIB)으로는 두께가 0.7㎜에 불과한 자동차강판의 단면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3일 오후 충남 당진에 위치한 현대제철연구소. 일관제철소 A지구의 가장자리에 있어서인지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하다. 하지만 연구동 안에선 각 실험실ㆍ분석실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Fe)과의 사투가 한창이다. 조원석 소장(부사장)은 "연구진의 일과는 대체로 오전 6시쯤에 시작해서 오후 10시쯤 끝난다"며 "해외 고객사들이 '현대제철의 놀라운 발전은 헌신적 엔지니어들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내가 우리 연구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현대제철소가 첫 삽을 뜨기 전인 2005년 12월 착공해 2007년 2월부터 본격 가동된 현대제철연구소는 실질적인 현대ㆍ기아차그룹의 핵심 연구개발(R&D)센터다. 자동차용 신소재 개발을 위해 현대제철(열연강판)뿐만 아니라 현대하이스코(냉연강판)와 현대ㆍ기아차(완성차)까지 참여하는 300여명 규모의 통합 R&D체제가 구축돼 있다. 제품개발 초기부터 소재 공급사가 참여하는 EVI(고객맞춤활동)시스템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현대제철연구소는 특히 선행연구가 돋보인다. 쇳물에서부터 자동차강판에 이르는 전 공정이 최첨담 설비가 갖춰진 연구동과 '미니 제철소' 같은 제철ㆍ압연실험동에서 철저한 실험ㆍ분석ㆍ피드백 과정을 미리 거친다. 연구동에서 자동차강판이 최고의 인장강도를 가질 수 있는 석출물의 밀도ㆍ분포를 찾아내면 실험동에서 이를 실제 생산과정에 적용해보고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발생하면 이를 다시 연구동에 전달해 문제점을 해결하는 식이다.
그 결과 고로를 가동한지 1년도 채 안되는 내년 초부터 자동차강판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다는 외판재까지 양산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사실 2007년 이후 지난해까지 특허출원만 1,798건에 달한다. 자동차강판 분야에선 분명 후발주자이지만 자동차 앞문과 뒷문 사이의 지지대인 센터 필라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인 150kg급(지름 1㎜의 강판이 150kg의 무게를 버티는 것)을 양산, YF쏘나타에 장착할 만큼 일부 기술력에선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차체분해분석실에서 만난 한 연구원은 "쇳물 생산에서 고장력 철강재 양산까지는 6~7년이 소요된다는 업계의 상식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녹색제철소'를 현실화시킬 기술개발도 연구소의 몫이다. 환경에너지센터를 개설해 배출물질 최적처리기술, 부산물 자원화 확대 등의 방안을 찾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특히 최근엔 고로에 투입하는 철광석과 유연탄의 일부를 대체할 소재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다. 고로의 경우 양질의 쇳물을 생산해내지만 전기로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현대차에서 자동차 재료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던 조원석 소장은 "자동차강판은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높아 안전성을 담보해야 하고 동시에 성형도 자유로워야 하는 등 모순된 요구가 응축된 제품"이라며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통합 R&D체제가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한 만큼 2013년이면 세계 최고의 자동차강판 전문 제철소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당진=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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