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생 동갑내기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공식 만남은 이번 방중을 포함, 모두 5차례 이뤄졌다. 네번을 중국 베이징에서, 한번은 평양에서 만났다.
두 지도자는 2000년 김 위원장의 집권 후 첫 중국 방문에서 처음으로 대면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 회담을 가진 뒤 후진타오 부주석도 면담했다. 이때는 일국의 정상과 상대국의 2인자와의 만남이었다.
이후 후 주석이 중국 권력의 1인자로 부상한 뒤인 2004년 4월 다시 만난다. '정상 대 정상'의 위치에서 첫 상견례를 가졌다.
세 번째 만남은 2005년 10월 평양.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답방 차원에서 후 주석의 방북이 이뤄졌다. 김 위원장의 정성은 각별했다. 김 위원장은 환영연회에서 "조중(朝中) 관계는 피로써 맺어진 전우의 관계"라며 직접 연설을 했다. 그의 공개 연설은 2001년 러시아 방문 시 푸틴이 마련한 크렘린궁 연회 이후 4년만이었다. 김 위원장은 후 주석이 도착할 때는 물론 떠날 때도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나갔다.
네 번째 만남은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로 6자 회담이 공전되던 2006년 1월 중국에서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당시 "북쪽의 돈줄을 미국이 막아 버린 것을 중국이 풀어달라"는 식으로 중국에 요청했지만 후 주석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김 위원장과 후 주석의 성장 배경은 극과 극이다. 아버지의 배경으로 권좌에 오른 김 위원장과 달리 차(茶) 가게를 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후 주석은 명문 칭화대 수리공학과를 졸업한 전형적 테크노크라트다. 통치 철학에서도 후 주석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기치 아래 실용주의를 앞세워 개혁 개방에 진력한 반면, 김 위원장은 일부 자본주의 요소를 내치에 반영하려 했지만 확고한 의지는 부족했다. 다만 어머니를 모두 어린 시절 잃었다는 공통 분모는 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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