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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물 부족의 '기든스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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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물 부족의 '기든스 역설'

입력
2010.05.0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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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물과의 전쟁 중이다. 어느 곳에선 물이 모자라 목이 타고, 다른 곳에선 '넘치는 물'의 공격으로 몸살을 앓는다. 이처럼 불평등한 물의 편재는 근대문명이 경제발전 신화에 매몰돼 화석에너지에 넘치는 애정을 쏟아 부었으나, 결국 그 무분별한 사랑이 부메랑으로 작용해 지구촌 곳곳이 가뭄과 홍수라는 재앙의 형태로 보복 당하고 있는 역설을 증명한다.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길'을 주창해 우리에게 신선한 시각을 제공했던 앤서니 기든스 런던 정경대학 교수가 얼마 전 이라는 책을 통해 또 한 번 통찰의 예지를 보여주고 있다. 기든스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화변화의 위험은 손으로 직접 만져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거의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무시무시한 위험이 다가온다 한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라며 "그렇게 기다리다가 중요한 대응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위기가 눈앞에 닥친다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른바 '기든스의 역설'(Giddens's paradox)이다. 기든스는 심각한 기후변화의 피해에서 벗어나려면 전 세계가 지금부터 즉시 과격할 정도의 획기적인 온난화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되풀이해서 경고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그 영향을 관측하는 가장 권위 있는 기구인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가 만든 수십 개의 시나리오 중 일부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 시나리오 중 하나는 인류에게 가장 유리한 경우라 해도 지구온난화는 계속 진행돼 금세기 말에는 연평균 기온이 현재보다 섭씨 1.1~2.9도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렇게 되면 해수면은 13~38㎝ 상승해 몰디브처럼 저지대 국가나 도시들은 치명적인 침수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 모하메드 나시드 몰디브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해저에서 내각회의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세계인들이 천혜의 낙원 몰디브가 수몰의 비극을 겪지 않도록 온실가스 방출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일종의 퍼포먼스를 연출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젖줄인 4대강도 기후변화의 공격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굳이 '매미' '루사' 등 악명 높았던 태풍이나 작년의 극심했던 태백 가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느 나라도 자연재해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다. 다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비해 나갈 뿐이다. 가장 효과적인 수자원 관리 수단은 댐 건설이지만, 환경보전을 중시하는 시민단체 및 수몰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계획이 무산되는 사례가 많았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자연재해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4대강 사업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기든스의 역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장 위험이 손에 만져지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강을 수십 년에 걸친 산업화의 부작용이 초래한 오염과 퇴적토 누적에 따른 하상 수위 상승 등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수자원 장기 종합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6년에 약 10억톤의 물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 부족 국가'라는 불편한 진실은 우리 세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적 소명이다. 4대강 사업으로 확보되는 13억톤의 물은 후손들의 앞날을 보장해주는 귀중한 생명수가 될 것이다. 풍부한 물을 확보하는 것은 넉넉한 에너지나 확고한 국방태세보다 더 중요한 안보문제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심술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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