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인형놀이 좋아하는 아들… 만3세쯤부터 성별 역할 구분
매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시는 시어머니께서 하루는 기분이 상해 오셨다. 어린이집에서 만난 다른 아이의 할머니 때문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우리 아이가 소꿉놀이 장난감을 갖고 요리를 한다며 종알종알 놀고 있었다. 손녀를 데려다 주러 온 그 할머니가 우리 아이를 보더니 "남자애가 벌써 요리를 하네, 나중에 커서 사랑 받겠다"며 웃으셨단다. 바로 이 얘기에 어머니가 마음이 상하셨다.
사실 비슷한 일이 집에서도 있었다. 아이가 요즘 냄비며 프라이팬이며 국자 같은 부엌에서 쓰는 도구를 갖고 노는 걸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 "아예 소꿉놀이 세트를 하나 사줄까 한다"고 무심코 어머니께 말씀 드린 적이 있다.
평소 아이 장난감 사주는데 전혀 인색하지 않으신데도 그때는 유난히 강하게 반대하셨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데리고 마트를 돌아다니다 부엌놀이 작은 거라도 사줄까 물으면 "싫다"고 딱 잘라 말한다.
어머니와 남편이 생각하는 남자아이의 장난감은 자동차나 로봇 공 같은 걸 게다. 물론 이런 장난감도 아이는 좋아한다. 특히 마음에 드는 자동차는 손에서 내려놓질 않는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소꿉놀이도 인형도 좋아한다. 밤에 잘 때 곰 인형을 옆에 눕혀 놓을 정도로.
아기가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터득하는 시기는 18개월 이전이란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만 3세쯤 되면 아이는 사람을 '남성군' '여성군'의 두 그룹으로 나누고 역할도 구분할 줄 알게 된다"며 "18개월까지는 '젠더 아이덴티티(사회적 성 정체성)', 만 3세까지는 '젠더 롤(역할)'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쯤 되니 우리 아이가 자라는 환경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집에서는 할머니와 엄마, 어린이집에선 교사다. 모두 여성이다. 아이 아빠는 야근이나 출장 등 여러 사정 탓으로 평일엔 한두 번 얼굴을 볼까 말까다. 아이가 젠더 롤을 헷갈려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여성학자들 사이에선 젠더 롤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다. 남자아이 여자아이의 장난감을 구분하는 자체가 남녀 성향에 대한 어른들의 고정관념이며, 어릴 때부터 굳이 남녀 차별적인 역할을 아이에게 심어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이의 소꿉놀이,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뭐든 좋아하는 걸 스스로 찾는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요즘 난 엄마로서 중요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젠더'를 알려줘야 하는지 말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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