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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오은선, 알피니즘과 상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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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오은선, 알피니즘과 상업주의

입력
2010.05.0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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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에서 하산한 오은선씨가 3일 카트만두로 향했다. 거기서 히말라야 등정 인증의 권위자로 꼽히는 올해 86세의 등정기록자 엘리자베스 홀리씨를 서둘러 만났다.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기록의 걸림돌로 남아 있는 칸첸중가 등정 논란을 풀기 위해서였다.

여성 언론인 출신으로 히말라야 고봉 등정에 관한 기록을 지난 50년 동안 정리해온 홀리씨는 약 한 시간에 걸친 오씨와의 면담에서 굳이 사실을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마지막으로 "14좌 완등을 끝냈느냐?"며 오씨 스스로의 다짐을 구했다. 이에 오씨는 "그렇다"고 답했고, 홀리씨는 환하게 웃으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오씨의 후원사인 블랙야크 측이 추진한다던 '국제공인'은 이로써 마침표를 찍은 셈이 됐다. 14좌 완등 경쟁자였던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 측이 의혹을 철회하지 않는 한 오씨의 칸첸중가 등정 여부는 홀리씨의 홈피에 여전히 '논란 중(disputed)'남겠지만, 홀리씨의 등정 인정으로 국제적 논란은 수그러들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무엇보다도 세계 등반사에 새 역사를 쓴 오씨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등정에 대해 남 앞에서 다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보는 마음은 이만저만 안쓰러운 게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의혹의 시선으로 보자면 끝이 없었다. 왜 등정사진에 정상 표식(산소통)이 없는가?, 왜 정상 부근엔 없는 고정로프(추정)가 등정사진에 보이는가?, 관측 가능한 지점을 벗어난 이후부터 정상 등정까지 걸린 3시간40여분의 시간은 믿을 만한가?, 같은 의구심이 꼬리를 물었다. 아무리 해명해도, 한 번 기운 의구심은 히말라야 준봉에 서린 눈보라처럼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함께 등정한 셰르파들이 정상이라고 말해줘서 사진을 찍었다"는 등 요령부득한 오씨의 해명이 오히려 논란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오씨의 등정에 관한 논란의 뿌리엔 그가 칸첸중가 정상을 밟았는지 여부 보다는, 여성 14좌 완등 경쟁을 둘러싼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이 자리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실제로 순수한 산악정신을 강조하는 알피니스트 사이에선 이벤트화한 14좌 완등 경쟁에 대해 지난해 고 고미영씨의 사망 때부터 이미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었다.

산악인 김현수씨는 최근 이와 관련, "아마추어 산악인들은 프로산악인들과 후원업체, 언론사의 이벤트로 영웅 만들기를 가공하는데 심각한 우려를 보내고 있다"며 "산악정신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김씨가 말하는 산악정신은 정상 등정을 최우선하는 전통적 '등정주의' 대신, 절벽 같은 어려운 루트를 개척하며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에 가치를 두는 '등로(登路)주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오은선씨는 프로다. 그리고 한 때 그 자신도 등반 비용조차 없어 고난의 세월을 보낸 사람이다. 따라서 14좌 완등이 기업의 후원에 힘 입은 것이고, 자진해 역경 앞에 서는 원론적 산악정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성공이 매도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산악정신의 본질과, 그 동안 우리 산악계에 만연했던 성과주의에 대한 중요한 성찰의 계기가 됐다. 홀리씨가 그랬듯, 오씨의 14좌 완등을 흔쾌히 믿고 축하한다. 그리고 이번 논란을 계기로 더욱 성숙해질 우리 산악계의 미래를 위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장인철 생활과학부장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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