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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비보이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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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비보이의 추락

입력
2010.05.0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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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미국 흑인 사회를 중심으로 탄생한 힙합(Hiphopㆍ엉덩이를 들썩인다는 뜻) 문화는 크게 4가지로 구성된다. 강하고 빠른 리듬에 맞춰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읊조리는 랩(Rap), LP레코드 판을 손으로 조작해 다양한 소리를 만드는 디제잉(Djing), 벽ㆍ교각 등에 에어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Graffiti), 랩에 맞춰 춤을 추는 비보이(B-boy). 이중 비보이는 즉흥적 동작과 자유분방한 표현, 고난도의 기술, '배틀'로 불리는 춤 대결로 10~20대들이 가장 열광하고 마니아층도 두텁게 형성된 장르로 꼽히고 있다.

■ 비보이가 국내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국내 그룹 '익스프레션'이 세계 최고의 비보이를 가리는 'Battle of the year 2002'행사에서 아시아 최초로 우승한 뒤 여러 비보이 팀이 세계 대회를 휩쓸자 비보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비보이는 난타와 함께 한류를 알릴 문화상품으로 부상했고, 정부 지원과 기업 후원이 줄을 이었다. 비보이 전용 극장도 생겼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처럼 연극ㆍ뮤지컬ㆍ국악 등 다른 장르와 비보이를 결합하려는 시도도 계속됐다. 천대 받던 미운 오리 새끼가 하루 아침에 백조가 된 것이다.

■ 그러나 문화ㆍ산업으로서의 비보이는 각광 받게 됐지만 춤꾼 비보이들의 현실은 열악하다. 국내 전문 비보이는 3,000여명. 이중 월급을 받는 프로 비보이는 5, 6개 팀 정도다. 나머지 상당수는 편의점에서 시급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하며 비보이 활동을 한다. 평생 춤꾼으로 살고 싶어도 20대 중반이면 비보이 세계에서는 노장 취급 받는다. 고난도의 기술 춤을 추구하는 탓에 부상도 잦다. 춤의 특성상 하루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굳어 활동이 어렵다. 그래서 비보이들은 군 입대를 두려워한다. 스포츠 선수들처럼 그들에게도 2년 공백은 치명적이다.

■ 세계적 비보이 그룹 멤버들이 정신병 환자 행세로 군 면제를 받았다가 적발됐다. 천안함 사태로 안보 경각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드러난 입대 기피 행각에 절로 장탄식이 나온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 뒤에서 질식하고 있는 젊은 재주꾼들의 현실도 돌아보게 된다. 비보이의 한류 상품화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체계적 교육이나 지원, 정당한 대가 없는 상품화는 젊은이들의 열정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장삿속에 불과하다. 비보이를 한류 대표 상품으로 계속 키울 생각이라면 그들이 입대해도 끼와 재주가 녹슬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이 필요하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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