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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불륜 소재 연극이 '막장'이 안 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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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불륜 소재 연극이 '막장'이 안 된 비결

입력
2010.05.0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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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나온 이인성의 소설 '한없이 낮은 숨결'에 구사된 섬세한 이미지나 관념은 투쟁의 언어가 욕망의 언어를 통제했던 당대의 예술적 지배 관념과 불화했다. 유사하게, 극단 풍경의 '낮은 밤'이 그리는 풍경은 풍요의 시대와 어긋난다. 극히 간단한 소품에 등장 인물도 단 두명뿐인, 가난한 무대여서만은 아니다.

사실 이 연극이 극단측의 우려대로 "불륜을 소재로 한 격정적 멜로"로 오독될 소지는 다분하다. 그러나 무대는 막장 드라마의 통속성과 강력한 정서적 환기력의 결정적 차이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회수(淮水)를 사이에 두고 귤과 탱자가 오락가락한다는 중국의 고사성어가 절로 생각날 정도다. 이 무대의 회수는 명료한 구획 짓기다. 무대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감정 개입의 여지를 냉정하게 자르는 연출자의 연극적 전략에 가장 큰 공을 돌려야 할 것이다.

쓸쓸함과 우울함이 섞인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통속적이까지 할 만큼 알려졌지만, 이 2인극의 섬세한 무대 운용과 적절히 융합된다. 30년 전 섬광처럼 지나간 1주일의 기억을 찾아, 산중에 홀로 사는 남자를 찾아온 여인이 이를테면 사건의 발화점이다.

여자의 죽은 남편은 10억원의 조의금이 올 정도로 미술계의 거두이자, 남자의 스승이었다. 스승이 집을 비운 짧은 1주일, 이들은 선을 넘는다. 둘의 관계는 일단락됐고, 이후 남자는 스승의 그림을 똑같이 그리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결국 둘 사이를 알아차리게 된 스승은 제자가 그린 부인의 초상화를 찢어버린다. 그러나 스승의 이름으로 말년에 발표된 그림들은 모두 제자가 그린 것들이었다. 오랜 세월 모필만 하다보니 아무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감쪽같아진 것이다. 제자가 그린 그림들은 "노장의 마지막 투혼"으로 칭송됐다.

이 연극은 무대의 미덕을 견지한다. 현재 사건이 벌어지는 중앙의 무대 외에도 3면의 벽을 따라 'ㄷ' 자로 좁은 공간을 마련한 무대 구조는 이 연극의 공간 운용 전략을 말해준다. 배우들은 중앙 무대와 그곳을 드나들며 또 다른 내면세계를 다양한 마임으로 표출한다. 길게 혹은 짧게 펼쳐지는 암전은 무대 상황과 맞물리면서 관객의 상상력과 궁금증을 촉발하는 가외의 효과를 낸다.

긴 키스와 농밀한 포옹 장면 등 에로 연극으로 치부될 만한 소지를 다분히 담고 있지만, 극의 시선은 차갑다. 지난해 여성연출가전에서 선보였을 때는 늦바람난 노년의 이야기로 비칠 만큼 두 사람의 애정에만 치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죽은 남편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면서 무대는 보다 객관적인 성취에 도달했다. 8일까지 정보소극장.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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