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이 유난한 것은 어디서든 실감이 된다. 꽃과 나무를 키우는 재미를 이야기하러 간 도서관에서 받은 질문 다섯 개 가운데 세 개가 교육에 대한 것이었고 그 중 하나는 아주 노골적으로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하느냐"였다. 생뚱 맞은 질문이 나온 배경이라면 역시 그 '못 말리는 교육열'일 것이다.
"먼저 토양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면 식물이 알아서 잘 자라듯 아이들도 어릴 때 실컷 놀리면서 튼튼하게 자랄 토대를 만들어주면 평생 좇아 다니면서 공부해라 취직해라 독립해라 성화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큰다"고 했지만 그다지 믿겨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신발 끈도 못 매는 초등학생들
이날 사서한테서 들은 사연은 더 충격적이었다.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데카르트와 단테를, 그것도 영어로 읽는 초등학생한테 '운동화 끈이 풀렸다'고 일러줬더니 신발끈을 못 묶는대요. 그런 건 아버지가 해주는 거라면서 손 하나 까딱 안 해요." 대여섯 살이면 시작하는 신발끈 묶기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도 못하는 아이의 뒤에는 책만 읽으면, 공부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부모가 있다. 이 아이에게 당장 필요한 교육은 책을 덮고, 밖에 나가서 뛰어 노는 것이다.
우리나라 어린이 책은 아이들이 들기에는 부담스럽게 무겁고 딱딱한 양장본이 많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그렇다. 어린이가 아니라 부모들이 아이들의 책을 골라주기 때문이다. 어린이들한테 스스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이 없다. 부모들이 읽으라고 권하는 책을 따라 읽는 학습이 있을 뿐이다.
어린이들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권리도 있어야 하지만 그에 앞서 자연 속에서 맘껏 뛰어 노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이 자유가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더 교육적이다. 유아교육학자들의 이야기로는 아이들이 밤에 이불을 걷어찰 때 번번이 부모가 이불을 덮어줘 버릇하면 잠결에 이불을 걷어찼다 다시 덮는 반응을 익히지 못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 엎어졌다 스스로 일어나는 과정을 익히지 못한 어린이들은 넘어질 때 팔을 뻗어 땅을 짚어야 한다는 것조차 몰라서 큰 부상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제 힘으로 살아가면서 뛰어 놀면서 익혀야 할, 몸을 쓰는 온갖 기술을 익히지 못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갈 복잡미묘한 끈기와 지혜를 갖추는 것도 막는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자유는 무엇보다 아이들 마음에 충만한 행복감을 선사한다. 아이들은 이런 것을 충분히 느끼고 자랄 권리가 있다. 가슴에 그득한 행복감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작은 고난에도 쉽게 좌절한다.
한국사회에서는 한 쪽에는 버려지다시피 돌봄을 못 받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는 너무 과하게 돌봐져서 어린 시절에 익혀야 할 자유도, 자립심도, 행복도 잃어버린 아이들이 있다. 교육이란 제 삶을 제 스스로 바람직하게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문자로 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학생 자녀의 수강신청 때문에 교수들한테 전화를 하고 자녀의 직장에까지 자녀의 결근을 통보해주는 부모들 역시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취직만 하면 교육을 잘 시켰다고 생각한다.
'골프기계'타이거 우즈를 보며
공부가 아니라 운동이나 예능을 아이들한테 일찍부터 익혀주는 것이 교육이라는 학부모들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어린이가 누려야 할 자유를 빼앗는다면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두 살 때 골프채를 잡은 타이거 우즈는 열여섯 살에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승승장구의 길을 달려왔다. 아름다운 아내와 예쁜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작년 말 그가 압박감에 시달리는 섹스중독자였다는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골프가 계속 내리막길을 걸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가 잠자리를 가졌던 여자들의 입을 막으려고 엄청난 돈을 뿌렸다는 것은 그가 사랑이나 신뢰는 전혀 배우지 못한 골프기계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부모가 조련한 천재의 삶이란 최고가 된다고 해도 파국이다. 그러니 온 나라의 부모들에게 부탁 드린다.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누릴 자유를 주자고. 그게 그 아이의 평생 행복과 자립을 보장해준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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