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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영 의무팀장 풋볼릭] 2002년 이영표가 부상 1주일만에 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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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영 의무팀장 풋볼릭] 2002년 이영표가 부상 1주일만에 뛴 사연

입력
2010.05.0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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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의 가슴에 붉은 함성을 메아리 치게 할 2010 남아공월드컵 개막이 성큼 다가왔다. 이번 대회에서는 어떤 드라마가 연출될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남아공월드컵 스토리가 시작되기 전 역대 월드컵을 되돌아보는 칼럼을 연재한다. 벌써 17년째 대표팀과 고락을 같이 하고 있는 최주영(58) 대표팀 의무팀장의 칼럼 '풋볼릭(footballic)'은 '숨겨진 월드컵'을 엿볼 수 있는 코너다. 태극전사들이 '꿈의 무대' 월드컵을 위해 어떠한 사투를 거치며 부상을 이겨내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2002년 한일월드컵의 열기는 5월31일 개막 후 불이 붙었다. 하지만 폴란드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불과 이틀 앞둔 6월2일 한국 대표팀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초롱이' 이영표(당시 안양LG)가 훈련 도중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것. 울산대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은 결과 왼쪽 종아리 근육 파열로 6주 진단이 나왔다.

가로 12cm, 세로 4cm 정도의 파열이었는데 이 정도 부상이면 월드컵 기간 내에 완전 회복은 불가능했다. 나를 비롯해 네덜란드 출신의 물리치료사 아르노 필립스와 윌코 그리프트는 회복 가능성이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하는데 까지 해본다'는 생각으로 부상 치료에 매달렸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회복 속도가 빠르게 이뤄지는 것을 보고 나와 물리치료사들은 초음파 검사에 약간의 의문을 가졌다. 파열 정도가 검사 결과보다 작지 않을까라는 공통적인 의견을 냈다. 상황은 불가능에서 희망으로 바뀌었지만 의무팀을 당혹하게 만든 사건이 터졌다.

부상 발생 경과 4일쯤 됐을까. 외국인 물리치료사 2명은 나를 찾아와 다짜고짜 "알고 있었냐"고 묻기 시작했다. 밑도 끝도 없이 물어보는 까닭에 나는 무엇을 질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요지는 이영표 선수 부상을 의무팀이 아닌 외부인이 치료했는데 알고 있느냐는 것. 대표팀에 의무팀이 있는 상황에서는 외부인 치료는 사전 동의나 협의가 있어야 했다. 당시 나도 외부인 치료가 이뤄진 것을 알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사실을 알아보고 대처하겠다"며 흥분한 물리치료사들을 달랬다.

사실을 알고 난 뒤 불쾌감을 숨길 수 없었던 나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만나 진위 파악을 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공교롭게 히딩크 감독이 안에서 내렸다. 히딩크 감독은 나를 만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영표를 어떻게 하든지 빨리 낫게 하기 위한 다급한 마음을 설명하면서 의무팀과 상의 없이 외부인 치료가 행해진 것에 대해 사과했다. 월드컵 관전을 위해 왔던 핌 베어벡 코치의 친구가 물리치료사였다. 베어벡 코치의 제안으로 히딩크 감독은 이영표가 외부인 물리치료사에게 치료를 몇 차례 받게 만들었다.

진위를 알게 된 나는 "지금은 전시 중이고 당신은 사령관이다. 전시 중의 사령관은 무엇이든지 행할 수 있고 명할 수 있다. 나의 자존심은 전시 중엔 없으니 모든 것을 뜻대로 하라"고 히딩크 감독에게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정말 고맙다"며 나를 끌어 안았고 사건은 일단락됐다.

의무팀과 외부인 불청객의 도움으로 이영표는 결국 부상을 당한 지 일주일 만에 뛸 수 있게 됐다. 나는 의무팀이 예상 밖의 불청객으로 불화 조짐이 일었지만 모든 게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조치였다는 공감 하에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이영표는 14일 포르투갈전부터 출전, 공수에 걸친 맹활약상으로 4강 신화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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