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그 불똥이 가장 허약한 계층인 이민자들에게 튀고 있다.
미국에서는 애리조나 주정부가 지난달 23일 이민법 개정안을 확정하면서 전국적으로 찬반 논란이 거세게 충돌하고 있다. '새 이민법이 통제가 되지 않는 국경 문제를 다스리고, 범죄를 줄이는 데 필요하다'는 입장과 '인종에 기반한 법적용이 인권 침해로 연결될 것'이라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다.
내달 6일 총선을 앞둔 영국에서는 이민법이 주요 선거 쟁점으로 부각됐다. 2000년대 들어서 북유럽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하면서 일자리 부족과 사회문제가 심각하다는 영국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 1월 이민자들이 유혈폭동이 발생하는 등 사회문제로 비화됐으며,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는 이슬람 첨탑, 부르카 금지 등으로 이슬람계 이민자들과 '문화 충돌'에 직면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유럽에서 이민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했다. 불법 이민자 문제를 필두로, 일자리 다툼, 교육 문제, 범죄, 종교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특히 미국은 애리조나주 이민법 발효 이후 갈등이 민주ㆍ공화 정치대결과 진보ㆍ보수의 이념대결로 확산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경관이 불법체류 의심자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한 애리조나주의 이민법이 특정 인종에게만 범죄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고 2일 폭스뉴스가 보도했다.
그러나 애리조나 주민 70%이상이 이 법안에 찬성하는데다가 수십년간 계속돼온 불법이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애리조나주의 최후 자구책이라는 찬성론도 만만치 않다. 평소 진보성향을 보여온 워싱턴포스트 마저 "미국이 비록 '이민자의 나라'이지만 근래 이민은 과거와 달리 사회통합과는 거리가 멀고 불법이민이라는 점에서 문제"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영국을 필두로 유럽에서도 이민문제 해결을 위해 법을 강화하는 추세다. 유력한 차기 총리후보인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는 강력한 이민제한을 위한 이민법 개정을 시사했다. 캐머런 당수는 ▦비EU 국가 출신 이민자 총수 제한 ▦국경경찰병력 강화 ▦영국인과 결혼하려는 외국인 영어능력시험 ▦학생이민 과정강화 등의 법안 마련을 약속했다.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역시 규제 강화를 공약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여론조사 결과 영국 국민 77%가 이민자 축소에 찬성하고 있다. 영국 내 동유럽 출신 이민자는 지난해 47만2,000여명으로 1997년 1만3,000여명보다 40배 가량 늘어났다.
2000년대 이후 유럽 전체로 이주한 동유럽, 아프리카, 중동계 이민자들 가운데 60%가 몰린 남부 유럽 역시 이민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국내총생산의 9%를 외국인 노동자가 책임지고 있지만 이탈리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세계이주기구(IMO)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이민자는 2억1,400만명으로 전세계 인구의 3.1%를 차지한다. 그 중 60%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인한 내국인들의 일자리 감소, 문화적 이질감, 마약 거래 전과자 유입 등 범죄 증가가 내국인과 갈등을 빚는 요소라고 지적한다.
FT는 "미국은 거대한 히스패닉 연합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불법이민자들의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보도했다. 유럽에서는 1990년대 동유럽이 붕괴돼 이 지역 이슬람계 유입이 급격히 늘면서 종교 갈등이 나타났고, 세계적인 경제침체로 인해 줄어든 일자리마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이 높은 상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사주간 타임은 "돈과 일자리를 찾아 선진국들로 이주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적 현상이기 때문에 강력한 이민 규제는 결국 불법이주자들만 증가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 호주, 어린이 무차별 구금 논란…
미국 이민법 논란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 일간지 아랍뉴스가 3일 “1990년대에는 서류도 제대로 구비하지 않은 노동자들마저 불러모으기 급급했던 미국이 이제 이들을 배척하고 있다”며 이민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나라의 모순된 오늘을 통렬히 꼬집었다.
세계경제가 악화하면서 미국을 비롯 과거 이민자에 우호적인 나라들마저 이민정책이 점점 더 혹독해지고 있는 가운데,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세계 최악의 이민법’을 채택한 다섯 국가를 소개했다.
한때 ‘이민자의 천국’으로 불렸던 호주도 피난민 및 불법체류자를 무차별적으로 감금하고 있다. 늘어나는 이민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호주 정부는 비자가 없는 이민자들을 구금하는 법을 시행 중인데, 1999년부터 2003년 사이 중동과 동남아시아의 어린이 난민 2,000명을 열악한 시설에 구금한 게 밝혀져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일본 정부는 무직 상태인 일본계 남미인들에게 귀국비용 3,000달러씩을 주는 대신 일본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니케이(일본계)법’을 작년에 통과시켰다.
인구의 83.5%가 이민자로 구성된 아랍에미리트(UAE)도 주당 80시간을 일하는 외국 노동력에 힘입어 경제가 굴러가고 있지만 노조 활동을 금지하는 등 악명이 높다.
이민자가 390만명에 달하는 이탈리아는 지난해 불법 이민자에게 최대 1만유로(약 1,480만원)의 벌금과 최대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위스는 극우 스위스국민당(SVP)이 집권하면서 이슬람식 첨탑건립 금지 등 정치중립국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민자에 극도의 혐오감을 보이고 있는 우파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기소된 외국인 범죄자와 그 가족까지 즉시 추방하는 이른바 ‘검은 양’ 법안도 추진하고 있다. SVP는 2007년 세 마리의 하얀 양 무리가 검은 양 한 마리를 스위스 국기 밖으로 발로 차 쫓아내는 극단적 선거 포스터를 내걸어 유엔으로부터 해명 요구를 받기도 했다.
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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