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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통증을 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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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통증을 말합시다!'

입력
2010.05.0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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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연구 때문에 전공의에게 전화를 건 일이 있었다. 그 전공의는 매우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심한 복통 때문에 지금은 통화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연락이 왔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 그런 것 같고, 지금은 한결 좋아졌다고 했다. "'아파 보니 말기 암 환자들의 고통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그 동안 왜 열심히 환자들의 통증을 조절해 주지 못했나." 못내 아쉬워했다.

자신이 겪어 보아야만 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2번의 수술 경험은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진단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 가벼운 수술이었지만, 통증 만큼은 참기 어려웠다. 그래도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말기 암 환자들은 고통이 끝나지 않으며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떤다. 실제도 말기암 환자의 80~90%가 통증을 호소한다. 암에 의한 통증이라도 약물치료 등을 통해 대부분 조절될 수 있으나, 많은 암 환자들이 충분한 통증조절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왜 의료진들은 통증조절을 꺼리는 것일까? 중학교 때 흔히 맹장염이라 잘못 알고 있는 충수돌기염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절개 부위의 봉합 실이 풀려 다시 아홉 바늘을 꿰맨 적이 있다. 담당의사는 상처 부위를 다시 마취하면 상처가 잘 아물지 않으니깐 마취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의사는 나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악의를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진통제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비슷하다. 최근 가까이 알고 지내는 분이 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난 후 며칠이 지나도 통증이 없어지지 않아 주치의에게 이야기했지만 역시 진통제를 처방 해 주지 않았다. 결국 가지고 있던 약을 먹었다. 간호사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가 그 진통제마저 빼앗겨 환자는 통증을 참고 견디어야만 했다. 의료진들이 아직도 환자들의 통증을 적극적으로 조절해 주지 않는다.

환자들은 어떤가? 통증이 있는 환자들 중에는 중독을 두려워하거나, 심해질 경우를 대비하여 진통제를 '아껴 두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이 많다. 진통제를 사용해도 통증을 조절할 수 없으며, 통증이 진통제로 인한 부작용을 참는 것보다 통증을 참는 것이 쉽다는 환자들도 있다. 심지어 의사의 주의를 분산시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까 봐 아프다는 말을 못하는 환자도 많다.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암성통증 관리지침 권고안'을 발표했고 환자들을 위한 교육자료도 제작하여 배포하는 등 암 환자들의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환자도 의료진도 통증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환자가 통증을 감추기 보다는 의료진들에게 정확히 말해 주고 의료진도 환자의 통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통증 관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또한 통증조절에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의료진과 환자들의 잘못된 두려움, 넓게는 국민들의 인식을 바꿔줄 필요가 있다. 오래 전 일본 NHK에서는 암 환자들의 통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일주일 동안 특집 방송하여 통증조절을 향상시키는데 큰 효과를 보았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매년 병원들과 함께 '통증을 말합시다.'라는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번 통증 알리기 캠페인에 신문과 방송이 적극 참여해서 대국민 홍보를 전개한다면 국민적 캠페인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며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책임연구원·가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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