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사육하던 돼지의 구제역 양성 판정으로 보유 가축을 모두 살처분한 충남 청양군 정산면 학암리 충남도축산기술연구소 앞 방역초소.
정부 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병한 탓인지 연구소 출입을 통제하는 방역초소의 근무자 8명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주변 도로에 소독약을 뿌리며 통행을 통제했다.
이곳은 우량종축(정액) 공급과 가축개량, 축산기술 보급 등 축산산업 발전을 위해 1,549마리의 종우(씨소)와 종돈(씨돼지)이 생산한 새끼를 도내 축산농가에 분양해 온 곳이다.
도는 이날 연구소 인근 500m 이내 9가구에서 사육 중인 295마리의 가축과 이곳에서 종돈을 받아 간 서산군의 돼지농장의 3,600마리 등 18농가의 가축 5,850마리를 살처분했다. 보관 중인 소와 돼지의 정액, 희귀종 한우인 칡소 14마리도 매몰했다. 또한 연구소에서 종우 종돈 정액 등을 받은 축산농가 13곳과 연구소 반경 10㎞ 이내 농가 1,180가구에 대해 이동제한 조치도 취했다.
도관계자는 "구제역의 유입을 막으려고 매일 2, 3차례 이상 축사를 소독했지만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지 못해 안타깝다"며 "구제역이 인근 축산농가로 번지지 않도록 126곳에 방역초소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기관인 연구소의 발병 때문에 살처분해야 하는 인근 축산농가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더구나 감염 경로도 규명하지 못해 축산농가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연구소에서 불과 300여m 떨어진 곳에서 소 22마리와 산양 3마리를 기르다가 이번에 모두 살처분한 이안순(57ㆍ여)씨는 텅빈 축사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혼자 몸으로 4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뒷바라지하기까지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소들을 땅속에 묻어 버려야 해 가슴이 아팠다. 이씨는 "자식처럼 끼워 온 소가 새끼를 날 때마다 내가 자식을 낳는 기분이었다"며 "내 잘못도 아닌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 떨어진 청남면 내직2리에서 젖소를 키우는 윤모(47)씨는 "구제역 발생으로 청정 지역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이곳에서 축산업은 끝장난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구제역 발생 여파는 축산농가 이외 다른 쪽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연구소와 공동연구를 위해 5년전 대전에서 인근으로 이전한 충남대 동물농장은 사육 중인 모든 동물(1,838마리)을 매몰처분했다.
국내 토종 가축의 종자를 공급하고 보존하는 천안시의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축산 관련 연구 기관의 방역 체계에 구멍이 뚫리자 직원들의 구제역 발생 인근 지역 출장과 주말 외출을 전면 금지했다.
청양양돈협회 배용식(58) 지부장은 "일반 축산농가는 멀쩡한데 정부 기관에서 발생했다는 게 말이 돼냐"며 "무너진 축산 기반을 다시 세우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앞길이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청양=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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